지각 있는 백인들에게도 혐오의 대상이었던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자 유진 테르블랑쉬(69)가 죽어서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인종갈등의 악령을 되살리고 있다.
임금을 못 받은 흑인 일꾼 두 명이 테르블랑쉬를 그의 농장에서 살해한 사건이 3일 발생하자, 그가 이끌었던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4일 "보복하겠다"고 밝히면서 남아공이 다시 인종주의의 공포에 휩싸였다. 더구나 이 단체는 세계 국가들에게 6월 11일 개막되는 남아공 월드컵에 "선수단을 보내지 말라"고 경고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테르블랑쉬가 대표로 있던 백인우월주의 단체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토착 백인) 저항운동(AWB)'의 앙드레 비사기 사무총장은 4일 "테르블랑쉬의 얼굴은 (폭행을 당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며 "이는 백인에 대한 선전포고로 그의 죽음에 보복하겠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복형태는 다음달 1일 AWB지도부 회의에서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사기는 이어 "남아공은 살육의 땅"이라며, 자국 선수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국가들은 월드컵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남아공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이번 상황을 악용해 인종간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가들을 절대 용납하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테르블랑쉬를 살해한 일꾼은 각각 28세, 15세이며, 6일부터 재판을 받는다. 그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르블랑쉬는 "죽어 마땅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끔찍한 인종주의의 화신이었다. 1973년 AWB를 창설, 백인만의 공화국 설립을 요구했다. "흑인에게는 임시노동자 자격만 줘야 한다""정권이 흑인에게 넘어가면 무력으로 탈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에는 흑인 노동자 2명 살해기도로 수감돼 2004년 풀려났다. AWB의 상징도 나치의 것을 본 땄다.
남아공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폐지했지만 인종간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처럼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동자의 갈등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인구의 16%에 불과한 백인들은 흑인들의 분노에 위협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지난주에는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회 한 지도자가 "보어(아프리카너)를 살해하라"는 과거 흑인 투쟁가를 불러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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