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 발행ㆍ300쪽ㆍ1만2,000원
성실한 작가 김숨(36)씨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1960~70년대 산업화시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세대의 불우한 초상을 담았던 <백치들> 과 <철> ,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등 그의 이전 장편과는 궤를 달리한다. 나의> 철> 백치들>
우선 배경과 인물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300만톤의 물이 있던 저수지를 메운 터 위에 세워진 집, 그곳엔 각각 불, 물, 소금, 금, 공기, 납의 속성을 지닌 일가족이 거주한다. 이 독특한 물활론적 상상력이 작품에 개성을 더한다. 김씨의 그로테스크한 묘사, 환상성 짙은 서사는 한층 강화돼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장녀 소금은 짧은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어머니 물, 자매 금과 공기가 사는 친정으로 돌아온다. 마침 그날 밤 14년 전 가출했던 아버지 불도 귀가한다. 30년 전 그가 혼자 저수지를 메워 집을 지은 이래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급속히 나빠진다. 수돗물이 갑자기 끊겨 일상은 마비된다. 물에서 얼음으로 변해 몸이 마비되는 일이 잦아지던 어머니는 스스로 메마른 수족관 안에 누워 병들어간다. 집 지을 때 빌린 은행돈, 쓰지도 않은 수도세를 독촉하는 자들이 가난한 가족을 짓누른다.
아비는 가장의 책임은 회피한 채 어여삐 여기는 딸 금의 순도를 높이려 매일 밤 금의 몸에 수상쩍은 연금술을 행사한다. 어머니 대신 살림을 떠맡은 소금이 수도관 공사를 위해 불러들인 배관공은 금을 능욕한다. 공기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이 아수라장을 외면한다.
잔혹동화의 분위기가 물씬한 이 소설은 가족 붕괴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작가는 서로 다른 심성을 지닌 존재들이 가족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상대방,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공멸해가는 과정을 환상적 기법으로 적나라하게 묘파한다.
불과 물의 부부관계의 경우, 불은 오로지 자신의 평안을 위해 결혼을 내켜하지 않는 물에게 매달려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아내를 길들여 온전히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미망에 집착한다. 그가 300만톤의 물을 몰아낸 터에 세운 집은 그 미망의 절정이자 예정됐던 실패인 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몰아내지 못한 단 한 방울의 물"(73쪽)인 것이다.
결국 사라진 줄 알았던 저수지 물이 홍수를 이뤄 집을 덮친다. 소금이 거듭 되뇌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다."(296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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