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구조작업을 조금만 더 서둘러 시작했더라면…."
4일 오후 1시께 백령도 용기포구 선착장.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돕기 위해 지난달 29일 백령도를 찾은 중앙119구조대원들이 인천행 여객선에 짐을 싣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달리 이들의 얼굴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전날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구조작업을 중단한 이들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고 있었다.
"비록 떠나지만 한쪽 발은 아직 백령도 바다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는 최종춘(42) 구조대 반장의 눈에는 진한 슬픔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최 반장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을 십분의 일도 덜어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돼 안타까운 심정 뿐"이라고 말했다.
간절한 염원에도 남기훈 상사가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실종자 가족들이 사실상 구조 포기와 다름없는 수색작업 중단을 군 당국에 요청하자 구조대원들과 천안함 사고 생존자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심현표(57) 해군 특수전여단(UDT) 예비역 동지회장은 "3~5일만 시간을 더 주면 확실히 찾을 수 있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젠 실종자들 시신이라도 모두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심 회장을 포함한 20여 명의 UDT 동지회원들은 이날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삼켰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어 버린 한주호 준위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순간을 추억하는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고 한 준위에게 가장 많이 혼이 났던 후배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승원(56)씨는 "후배들에게는 안전하게 하라며 수십 번씩 강조했던 양반이 무리를 해서 결국…"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장씨는 "지금도 한 준위 목소리가 들리는 같다"며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장씨와 UDT 동기인 이헌규(56)씨는 "한 준위를 추억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정철(57)씨는 "UDT 동지회원들 모두가 생업을 제쳐두고 후배들을 찾으러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발길을 돌려야 해 섭섭하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애끊는 심정은 안타깝지만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백령면 연지리 김준희(56)씨는 "백령도 바다는 생각보다 험하기 때문에 수중 수색작업을 계속했다면 또 다른 희생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실종자 가족들이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고 위로했다. 진촌리 유원봉(71)씨는 "내 자식이 천안함에 있었다고 해도 구조작업을 그만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헤아리지만 (구조작업을)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말했다.
시민들도 아픔을 함께 하며 실종자 가족들의 고심 어린 결단에 위로의 말을 건넸다. 회사원 정제원(31)씨는 "군 당국이 사고 초반에 대처를 제대로 못해 실종자 구조에 실패한 것 같다"며 "안타깝지만 (구조작업 중단이) 현실적인 결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송영숙(51)씨는 "그간 힘들었을 실종자 가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며 "매우 안타깝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희망이 없어져 인양 결정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대 의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현지(26)씨는 "실종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더 이상 희생자를 막기 위해 실종자 가족들이 잘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고인을 추모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cschun'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서 "구조작업 중단 요청을 해야만 했던 유가족들의 심정이 절절히 전해 오는 듯해 안타깝다"고 가슴 아파했다.
결과적으로 실종자 구조 작업에는 실패한 군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선체 인양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추가적인 희생과 고통을 막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구조작전을 중단하고 인양작전으로 전환하도록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린다"며 "하루라도 빨리 천안함 선체를 안전하게 인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령도=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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