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굳이, 은현리의 사월이 아니어도 별처럼 피어나는 목련꽃 아래에 서면 목월(木月) 선생의 '사월의 편지'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시간입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서 이름 없는 작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떠난다는 이 물기 젖은 구절에서, 나는 항상 휘파람의 가락을 놓치고 맙니다. 그 나그네의 심정이 내 마음 같아 울컥 슬픔이 복받쳐 오릅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과 꽃샘잎샘으로 이어지던 긴 추위 속에서 미라처럼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풀립니다.
얼었던 강이 풀리며 유유히 흐르면서 그 사월의 나그네는 '세월'이란 배를 타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쏟아지는 햇볕을 쬐며 몸속에 남아있던 지난 계절의 우울한 그늘을 말립니다. 활짝 펼쳐 뽀송뽀송하게 말립니다. 햇볕이 금가루 같고 봄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디언들은 사월을 '얼음이 풀리는 달'(히다차 족)이라고 하고,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검은발 족)이라고도 했습니다. 나의 사월은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달입니다. 유리 펜에 녹색 잉크를 꼭꼭 찍어 호수 같은 내 마음을 다 풀어내 바닥이 훤히 보일 때까지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4월이라고. 4월이 왔다고.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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