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일본한테서 피해보상 좀 꼭 받아내 주세요. 억울하게 살다 간 우리 아버지 인생을 생각해서라도 부탁 드립니다." 지난달 31일 전남 순천에서 열린 대일 민간청구권 소송 설명회에 참석한 한 70대 할머니는 설명회 종료 후 연단에 서 있던 50대 중년남자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매달렸다. 그러자 그는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며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손을 꼭 쥐었다.
선생님이라 불린 그는 태평양전쟁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준비 중인 대일 민간청구권 소송의 소송대리인 마이클 최(53ㆍ한국명 최영) 변호사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베트남전쟁 고엽제 피해와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 노근리 사건 등의 피해자 배상소송에 앞장서온 국제인권 변호사로 명망이 높다. 수년전 한국인 비하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미국 NBC방송을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미국 내 한인들의 인권보호에도 열성적이다.
이런 최 변호사가 필라델피아 소재 자신의 로펌 동료 변호사인 로버트 스위프트씨와 한국을 찾은 건 지난달 29일. 이들은 도착 직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대일 민간청구권 소송 발대식'에 참석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길고도 먼 여정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최 변호사 등은 지난달 30, 31일 광주와 전남 순천, 전북 진안과 고창 등지를 돌며 유족회원 1,500여명을 대상으로 대일 민간청구권 소송과 관련한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 후 회원들은 자의에 따라 이번 소송에 참여한다는 내용과 그 권한을 유족회에 일임한다는 위임각서와 소송을 위해 최 변호사 등을 수임한다는 수임계약서(수임료 3만원)를 작성해 유족회 측에 제출했다.
현재 유족회가 민간청구권 소송을 위임 받은 회원은 약 6,500명. 유족회는 전국 각 지부와 지회 등에서 8월 초까지 전국의 회원 12만명 중 10만명 이상을 모으는 게 목표다.
유족회 관계자는 "일단 8월5일까지 설명회 등을 통해 회원들로부터 소송 위임을 받고, 그 때 결과를 봐서 소송 위임을 더 받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계획대로라면 8월 초 일본 사법부에 일본정부를 상대로 민간청구권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 변호사는 이달 내로 일본 도쿄에 사무실을 내고 소송 관련 작업을 시작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2일 미국으로 출국한 최 변호사는 "강제 징용ㆍ징병자와 위안부 피해보상 소송이 일본과 미국 법원에서 패소했을 만큼 쉬운 건은 아니다"면서도 "예전 소송을 되짚어보면서 '이기기 위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필승 전략의 하나로 민간청구권 소송과 문화재 반환 소송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공개할 수는 없지만 10만여 점으로 추정되는 일본 내 한국 문화재 반환 소송은 일본의 과거사 보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좋은 협상카드"라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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