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진해 군항제가 조용히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군항제 행사는 전야제 불꽃놀이와 해군 의장대 축하 공연이지만, 취소돼 다행이다. 해군의 도시 진해는 천안함 침몰사고로 지금 상중(喪中)이다. 오는 7월1일 창원시와의 통합을 앞두고 진해란 이름으로 치러지는 마지막 군항제이지만, 군항(軍港)인 까닭에 진해는 축제보다 애도의 분위기다.
진해 군항제는 벚꽃과 해군이 있어 아름다운 축제다. 하얀 세일러 군복을 입은 해군 군악대의 경쾌한 연주,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던 해군 의장대의 장엄한 의식(儀式), 필승이라는 구호를 외치던 해군 사관생도의 멋진 경례 모습까지도 내게는 4월의 꽃처럼 화사했다.
나는 군항제 전야제 밤에 촛불로 밝힌 축등을 들고 이 도시를 행진하는 어린아이였고, 밤하늘을 형형색색 신비한 꽃으로 수놓던 불꽃에 환호하던 소년이었다. 고향에는 조용조용 꽃만 피어있을 뿐 군항제의 멋진 주연이었던 해군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지나치는 수병의 어깨 처진 뒷모습에 눈물이 핑 돈다.
살았다면 어디선가 어깨를 스쳤을 사람, 진해 사람 고 한주호 준위는 이제 이 꽃 아래 없다. 꽃은 지기 위해 핀다. 꽃 피는 벚나무 아래에서 지는 꽃을 생각하느니, 진해의 모든 꽃잎이여, 훨훨 날아가 서해 바다를 연분홍 꽃 비단으로 덮어주시길. 차렷, 경례! 꽃나무 아래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거수경례를 한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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