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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몽골 전사들의 만찬 '철판요리' 눈·코·귀·입이 다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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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몽골 전사들의 만찬 '철판요리' 눈·코·귀·입이 다 즐거워

입력
2010.04.0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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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황량한 벌판. 어둑어둑해질 무렵 한 무리의 전사들이 지친 몸을 쉬고 있다.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를 적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지만 그저 침묵할 뿐이다. 배가 고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허기를 느끼는 인간이란 존재가 가엽기만 하다.

누군가 소 오줌보를 내온다. 출전하기 전 말린 고기를 가득 넣어둔 터였다. 한쪽에선 물을 끓이고 다른 한쪽에선 방패를 닦으며 일사불란하게 식사 준비를 한다. 잠시지만 소중한 시간이다. 전의와 두려움 모두 내려놓은 채 서로를 마주할 수 있으니까.

중식과 일식 철판요리 차이

한번 상상해봤다. 치열했던 전투를 뒤로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옛 몽골 전사들의 모습 말이다. 사실 우린 그들 덕을 보고 있다. 소 오줌보에 담아온 고기를 끓는 물에 넣어 익혀 먹었던 게 샤브샤브가 됐다. 전사들은 방패 아래에 불을 피워 뜨겁게 달군 다음 고기를 얹어 구워먹기도 했다. 이는 지금의 철판요리로 발전했다.

철판요리 하면 흔히 일본식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원조는 몽골인 셈이다. 옛 몽골 전사의 지혜를 일본보다 먼저 받아들인 나라가 있으니,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선 둥글 넓적하게 패인 철냄비에서 짧은 시간 동안 확 익혀낸 재료를 미리 달궈둔 작은 철판접시에 담아 그대로 상에 낸다. 철냄비에서 철판접시로 옮겨진 뒤에도 계속 불 위에 있는 것처럼 차르르 지글지글 소리가 요란한 데다, 매캐한 연기까지 성급하게 솟아오른다. 맛 말고도 보고 듣고 맡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식 철판요리가 생겨난 배경엔 1964년 도쿄올림픽이 있다.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 나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일본식 요리법을 한창 연구하던 때 일본의 눈에 띈 게 바로 중국식 철판요리였다.

중식 철냄비는 두께가 약 0.5cm. 센 불을 가하면 순간적으로 500℃에 육박할 만큼 온도가 올라간다. 이런 순간화력을 이용하는 게 중식 철판요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본은 철판 면적을 넓히고 1cm 정도 더 두껍게 만들어 철판에 가해지는 화력을 줄였다. 철판 온도는 230℃ 내외로 낮아졌다. 대신 화려한 손기술을 가미했다. 고기나 해산물 채소를 올리고 양손으로 아기자기하게 섞어가며 은근히 익힌 다음 접시에 담아낸 일식 철판요리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휘량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조리부 과장은 "철판요리의 원조는 몽골, 시각 후각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철판요리의 진수는 중국, 철판요리를 세계화시킨 건 일본"이라고 설명했다.

부우우, 치이, 지글지글…

이 과장이 철판요리를 하는 중식당 주방은 유독 시끄럽다. 요리사들 목소리 톤도 높아 싸우는 걸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철판요리의 순간화력 때문에 생긴 독특한 풍경이다. 화덕에 올린 철냄비에 열을 가하기 시작하자마자 부우우 하는 소음이 온 주방을 덮는다. 옆 사람 말을 알아들으려면 귀를 쫑긋해야 한다.

달아오른 철냄비에 양파를 넣고 술을 살짝 뿌리면 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며 철냄비를 감싼다. 이 과장은 "술이 재료의 잡냄새를 없애줄 뿐 아니라 화력을 순간적으로 확 살려주는 역할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가 살짝 익힌 쇠고기 안심과 굴소스 중국간장 육수를 양파에 넣고 다시 볶았다.

옆 화덕에서 홀로 달궈진 작은 철판접시 위에 손끝으로 물을 묻혀 흩뿌리자 치이 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뭉친 물방울이 철판 위를 스케이터처럼 미끄러져 다닌다. 이 과장이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철냄비에서 80% 정도 익힌 재료를 철판접시에 옮겨 담을 타이밍 말이다. 나머지 20%는 철판접시가 간직한 열로 익힌다.

철판의 지글지글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옛 몽골 전사들의 방패에서도 그렇게 먹음직스런 소리가 났을까. 밀레니엄서울힐튼 중식당 '타이판'의 철판요리 특선은 이달 말까지다. 02)317-3237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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