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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의 몸으로, 마음으로] 섬진강, 두 바퀴에 몸을 실어 꽃길 따라 꿈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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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의 몸으로, 마음으로] 섬진강, 두 바퀴에 몸을 실어 꽃길 따라 꿈길 따라

입력
2010.04.0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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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잔인했다. 눈 오고 비 내리고 흐리고 바람 불어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겨울 같은 봄이 영원할 수는 없다. 모진 날씨 속에서도 봄은 서서히 다가왔다. 진작에 했어야 할 봄 구경을 한답시고 섬진강으로 달려갔다.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피는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이 이상 날씨 때문에 동시에 피어있단다. 험한 일기를 이기고 귀하게 피어난 그 꽃들을, 매연 뿜으며 스치듯 지나치고 싶지 않아 접이식 자전거를 집어 넣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시작해 전북 순창, 전남의 곡성과 구례를 거쳐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 사이를 통과한 뒤 바다로 빠진다.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225㎞에 이르는 큰 강인데도 비교적 수질이 좋고 경치도 예쁘다. 강 옆으로는 크고 작은 길이 이어져 걸을 수도, 자전거나 자동차를 탈 수도 있다.

그 길 전체를 자전거로 돌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구례읍에서 하동군 화개까지는 19번 국도를, 화개에서 광양 매화마을까지는 861번 지방도로를 타기로 했다. 전체 길이는 40㎞ 정도, 먼 거리가 아니다. 섬진강 도로는 자동차 길로도 최고지만 자전거 길로도 최고다. 별도의 전용도로는 없어도 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옆으로 길게 드리운 지리산, 백운산의 산 자락에 안기듯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라이더들이 한 번은 가고 싶은 길이다.

출발지 구례읍 부근은 노란 색 물결이다. 산이고 길이고 다 노랗다. 같은 노란색인데도 연하고 은은한 것이 있고 짙고 선명한 것이 있다. 전자 산수유가 훨씬 많고 후자 개나리는 아직 적은 편인데 멀리서 보면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안장에 오르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꽃을 보고 봄을 느끼는 여행인 만큼 속도는 내지 말자,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 길인 만큼 안전하게 달리자.

19번 국도를 선택하면서 약간의 고민을 했다. 강과 떨어진 구간이 제법 있기 때문인데 굳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자동차로만 들렀던 운조루를 자전거로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물은 아니지만 조선 양반가의 건축 양식을 담고 있는데다 집 앞의 너른 들이 좋아 구례에 오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차로 갈 때는 몰랐는데 그 운조루 부근은 야트막한 고갯길이어서 자전거로 넘기에는 힘이 들었다.

운조루를 지나 865번 지방도 진입로를 지나니 길이 강과 붙는다. 왕복 2차로 길에서 뒤따라 오는 자동차에 부담을 느꼈는데,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페달도 잘 도는 것 같다. 3월까지 눈,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강은 수량이 많고 물색도 좋다. 해가 조금씩 기울고 그림자가 강줄기를 파고 들며 길게 드리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는데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서 이곳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화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화개에는 너무 많은 사연이 있다. 김동리의 '역마'에서 화개는 아련한 땅이지만, 조영남의 '화개장터'에서 화개는 씩씩하고 떠들썩한 삶의 현장이다. 지금의 화개는 숙박업소와 식당이 즐비한 관광지가 됐지만 25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한적하면서도 정취 넘치는 시골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어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옛날의 그 화개가 그립다. 여기에서 쌍계사, 칠불암을 오가며 고찰의 분위기에 젖었고 화개천의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하고 메기도 잡았었다.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길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는데 벚꽃이 활짝 피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화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오전7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남도대교를 넘어 광양으로 건너니 861번 길과 만난다. 원래 한적한 길인데 평일 이른 아침이라 특히 고요했다. 파랗고 빨간 색깔의 남도대교는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잇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이란다. 그렇다고 지역화합을 이야기할 때 이 다리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매화마을 가는 길은 꿈 같은 길이다. 하얀 매화군락이 자전거 여행자를 환영하는 것 같다. 가끔 개나리, 대나무, 소나무가 있지만 웬만한 곳은 다 매화다. 도로 옆 밭도, 멀리 야산도, 농가의 마당도 매화 세상이다.

길은 전체적으로 오르막이다. 조금씩 경사가 있기 때문에 딱 그만큼 힘이 든다. 특히 관동마을에서 송정공원을 넘어갈 때는 제법 숨이 가빴다. 고갯마루에 서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는 강 풍경은 섬진강 전체를 통틀어서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이 조용한 곳에서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 여행과 비교를 안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전거 여행이 훨씬 좋다. 자동차 여행에 비해 깊고 복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좋았던 것은 새 소리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새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자동차를 탔다면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는 새가 동행한 것이며 그래서 외롭지 않은 여행이었다. 냄새도 좋았다. 밥짓기 위해 나무 때는 냄새는 아니어도 이른 아침에 흘러온 포근한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가장 상쾌했던 것은 바람이었다. 자전거에서 맞은 강바람이 매서웠지만 상쾌하고 시원했다. 자동차 소리가 그렇게 큰 줄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새삼 알았다. 비교적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의 소리조차도, 조용한 이곳에서는 굉음이었다.

마침내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남도대교에서 20㎞ 정도 거리이기 때문에 중간에 약간 가파른 길이 있어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매화마을의 매화축제는 이미 끝났는데 지금이 절정인 듯 온 동네가 하얀 눈에 묻힌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매화를 어찌 다 심었을까. 매화마을에 오르니 강 건너 하동 땅의 가파른 산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박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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