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1일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설명 자료를 내놓았지만 사고 당시 정황을 정확히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군에 대한 불신과 의혹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시각, 새떼 오인 사격, 천안함의 항로 변경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군의 입장과 아직 남아 있는 의문점을 정리했다.
■ 45분→22분 세번째 변경
자료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는 당초 사고 발생 시각을 26일 밤 9시 45분께로 발표했다. 해군 작전사령부로부터 유선으로 보고받은 시각이라는 것이다. 군은 이후 사고 당시 천안함 포술장이 휴대폰으로 2함대 사령부에 보고한 시각을 기준으로 9시 30분께로 변경했다. 군은 이를 바탕으로 공식 사고 발생 시각을 9시 30분께로 고수해 오다 사건 발생 7일째인 이날 겨우 9시 22분께로 고쳤다.
이와 관련, 군은 내부조사에서 포술장이 2함대 사령부 상황반장에게 보고한 최초시간을 9시 28분께로 파악하고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천안함 함장도 조사에서 27일에는 9시 25분께, 28일에는 9시 22분께로 진술하면서 시간이 다시 앞당겨졌다. 최초 발표와 무려 23분 차이다. 군은 최초 보고에서는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이 중요하다고 강변하지만 초동 대응 과정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감지한 사고 해역의 지진파 발생 시각은 9시 21분 58초다. 이는 함정의 폭발음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자료는 철저히 무시되고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했다. 이에 대해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그건 민간 자료고 군의 조사 자료가 아니다"고 말했다. 군이 과학적 데이터를 외면한 채 어떻게든 사건 발생 시각을 늦추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한 9시 16분께 비상명령이 내려졌다는 일부 실종자 가족의 진술에 비춰 보면 사건 징후가 발견된 시각이 9시 22분 이전일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 있다.
군은 또 천안함 포술장이 2함대 사령부 상황실장에게 휴대폰으로 처음 보고했다고 하지만 당시 천안함에는 휴대용 통신장비(PRC_999K)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군은 휴대폰 보고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장비의 교신기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따라서 천안함이 상부에 보고를 정확히 언제부터 해 언제 끝났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 속초함 발포·출동
군은 "천안함 상황 발생으로 2함대 사령부가 해상경계 태세를 A급으로 격상했다"며 "따라서 현장에서 남쪽으로 49㎞ 떨어진 해역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속초함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단까지 전진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후 10시 55분께 속초함이 사격통제레이더를 통해 백령도 북방에서 42노트로 고속 북상하는 미상의 물체를 포착했고,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적 함정이 천안함을 공격한 후 숨어 있다가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해 2함대 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오후 11시께부터 5분간 76㎜ 주포로 130여발을 사격했다.
군은 또 "표적까지의 거리가 9.3㎞인 점을 감안해 유효사거리가 8㎞에 불과한 40㎜포가 아니라 유효사거리 12㎞인 76㎜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격 후 분석 결과, 레이더상의 표적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분리됐다가 합쳐지는 현상이 2회 반복됐고 표적이 함선이 갈 수 없는 육지 한가운데로 사라진 점, 고속 항해 시 발생하는 물결 형태가 나타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새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초함은 대공레이더는 없고 대함레이더만 있어 과연 새떼를 포착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날 군은 "가까운 표적은 대함레이더로도 포착된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는 사거리가 긴 포를 사용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특히 군이 '미상의 적 함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간 부인하던 북한 연루 가능성을 처음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실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새떼와 속도가 비슷한 반잠수정으로 인식할 만한 정황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 물론 레이더 화면도 공개하지 않았다. 속초함이 그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고속기동에 적용되는 표적모드가 아닌 탐색모드로 북상했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고 수역과 인접한 백령도의 대다수 주민들이 "새떼에 포사격을 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고개를 젓고 있는데 이는 이런 의문점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한 속초함이 표적을 포착한 것은 사고 발생 1시간 30분 후인 오후 10시 55분께다. 상부 지시에 따라 고속으로 북상한 것 치고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합참은 당초 속초함의 포 사격에 대해 "교전수칙에 따라 (함장 자체 판단으로 이뤄진) 자위권 先?라고 했다가 이날 "2함대 사령부 승인 후 사격했다"고 말을 바꿨다.
■ 비정상적 항로
군은 "천안함이 승인된 정상 경비구역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백령도에 근접해 기동한 것은 북한의 새로운 공격 형태에 대응, 경비작전 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대북 작전계획상 미리 정해진 항로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과거에 비해 기동 공간 측면에서 함장에게 좀 더 많은 융통성을 부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실제 최원일 천안함장이 부임 후 이 같은 권한을 10여회에 걸쳐 사용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공개했다.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비구역 이탈과 달리 경비구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함장의 재량으로 사고해역을 지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북 작전계획상의 정해진 항로를 갔다는 것과 모순이다.
이에 대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상적인 작전수역이기는 하지만 당시 파도가 심해 천안함이 그리로 피항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작전보다는 함장의 재량 쪽에 무게를 둔 것이다.
하지만 사건 당일인 지난달 26일은 한미독수리훈련이 한창이었고, 사고 수역이 북한과 인접한 NLL 인근이었다는 점에서 함장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재량으로 항로를 바꾸기에는 위험 부담이 적지 않다. 한 예비역 해군제독은 "천안함처럼 큰 규모의 초계함이 그처럼 북과 근접한 지역을 지나갔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당시 천안함 내부에 뭔가 큰 문제가 생겨 일단 함장의 재량으로 항로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상부 보고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의 항로를 설명해 줄 교신기록에 대해 군이 함구하고 있어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날 군은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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