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기.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밥 못 먹는 어른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내 옆자리 부장님이 그렇다. 혼자 식당에 가는 법이 절대 없다. 바글바글 점심 손님이 넘치는 밥집에 쓱 들어가 앉고, 틈바구니에 껴서 후딱 한 그릇 먹는 것이 무어 어렵냐고 나는 묻지만, 그녀는 소심하고 수줍게 "아직 배 안고프니 괜찮다"고 답한다. 혼자 밥 집에 앉느니 굶는 부장님. 사람 좋아하고 정 많아서 그런가?
시집 가고 장가 갈 때까지 부모님 집에 함께 살던 우리의 관습이 점점 변하고 있다. 서양에서야 오래 전부터 '18세 이상은 독립할 수 있으니 이제 부모에게 폐 끼치기를 그만하고 네 길을 가라'는 정서가 통해 왔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의 힘이 생활의 중심이었던 우리도 일인가족이 이렇게 늘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부장님처럼 가족과 함께 살지만, 식사시간은 주로 회사 근처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 일찍부터 독립을 꿈꾸며 분가한 학생들, 본가와 직장이 멀어서 회사 근처에 하숙을 하는 직장인들, 아직 아이 없이 알콩 살다가 일 때문에 주말 부부가 된 이들, 이렇게 일인가정 혹은 이인가정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것은 즉, 누군가는 오늘 저녁을 혼자 먹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반대했던 음식공부 한답시고 혼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침 조리실습을 들으려면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는 동선 때문에 아침 여섯 시 즈음해서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7시 반이면 나는 조리복을 입고 실습실에서 감자를 씻거나 도마를 소독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일찍 시작된 하루를 늦게 마감하고 겨우겨우 집에 오면 황량하게 나를 기다리는 작은 방은 참 쓸쓸했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었지만 정작 상에 앉아서 천천히 음미할 '식사시간'이 없던 하루 끝에 주어진 유일한 밥시간은 친구도 식구도 없이 온전히 나 혼자였다. 처음에는 혼자 차려 먹거나 집 앞 중국집에라도 혼자 다녀오기가 귀찮아서 밥을 거르기 일쑤였지만, 어느 순간 건강을 위해서 밥을 거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튼튼해야 남을 위한 요리도 만들 수 있는 거니까.
한 번 마음을 고쳐먹으니 '혼자 밥 먹기'가 즐거워졌다. 하루 중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까?' 생각하고, 귀가 길에 간단하게 장을 봐서 나만을 위한 1인분의 요리를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혼자 밥 먹는 재미를 알게 되면 구태여 동료들의 밥 때를 기다리지 않게 되어 '왕따'를 자청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생기기는 했다. 음식 칼럼을 위한 취재차 지방에 내려가도 불쑥 들어간 동네 밥집에서 맥주 한 잔을 혼자 비우기도, 혼자 먹으면서 밥집 아주머니와 수다를 나누다 좋은 지역정보를 얻기도 했다. 혼자 밥 먹는 일이 싱글 시절보다 줄기는 했지만, 가끔씩 혼자 점심이라도 먹어야 하는 날이면 서울에 남겨진 쓸쓸한 도시인이 되어 '오늘은 뭘 먹을까' 하며 몸집 작은 이리처럼 사무실 근처를 어슬렁거려 본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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