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김중수 호(號)'가 닻을 올렸다. 신임 김 총재는 1일 한은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금융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정상화되는 변곡점에서 중앙은행을 이끌게 된 김 총재는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경제회복 지원과 출구전략, 중앙은행 독립성과 정부정책 협조 등 현안 하나하나마다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실상 '샌드위치'상태에 놓여 있다는 평가다. 김 총재도 취임사에서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면서 무거운 마음을 표현했다.
한은 독립성 확보와 위상 강화
김 총재는 내정 직후 "물가와 성장이 상충될 때 최종 판단은 대통령이 하는 것" "중앙은행의독립이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이날 그런 시각을 의식한 듯, 취임사에서 "중앙은행은 법적으로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중립성 자율성 자주성을 갖고 있다"며 "이것은 훼손될 수 없는 중앙은행의 가치이며, 이를 지키기 못하고서는 결코 우리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또 "누구나 한국은행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금융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으며 관련되는 제반 제도와 관행을 정비해야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 국회에 계류 중인 한국은행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총재가 독립성을 강조함에 따라 내정 당시 발언에 대한 논란은 일단 수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김 총재가 '독립적 중앙은행 수장'이 될지는 향후 통화정책 결정과정에서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전망이다.
출구전략 늦어질 듯
김 총재 앞에 놓인 최대숙제는 역시 출구전략 시행. 시장은 이미 김 총재가 금리인상을 하반기 이후로 늦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날 취임식 후 기자회견에서 김 총재가 세계 중앙은행과의 공조와 협력을 중요시하는 발언을 거듭하자 장중 채권 금리가 떨어진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채권 딜러는 "이날 취임사는 대부분 예상했던 수준이었다"며 "특히 국제 공조를 강조한 부분이 금리인상 시점이 늦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크게 부합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홍범 경상대 교수(사회대 학장)는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금리를 올리거나 최소한 시그널이라도 보내야 한다"며 "한두 달 안에 변화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이후 시장은 한은이 아니라 정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의 협조를 중시하는 김 총재인 만큼, 외환정책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경외환정책을 주도했던 최중경 신임 경제수석의 등장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사실 이성태 전 총재는 "주가나 환율 등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외환시장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2008년처럼 과격한 개입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당국의 환시 개입 시 한은이 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장과의 소통이 관건
이처럼 산적한 과제를 풀어나가며 시장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김 총재도 취임사에서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사실과 인식의 차이를 적절하게 메워주어야 하며, 시의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해 경제주체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되 전달과정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첫 시험대는 9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금리는 동결되겠지만, 김 총재가 금통위 후 기자회견에서 어떤 시장메시지를 전달할 지가 관심사다. '시장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김 총재로선 상당히 긴장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총재 자신이 갖고 있는 통화정책의 철학과 확신이겠지만, 이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시장과의 소통을 어떻게 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金총재 "G20 의장국 걸맞은 중앙銀 역할 고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일 오전 취임식 직후 기자실을 찾아 "G20 의장국 위상에 걸맞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소감은?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다.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 하겠다. 한은 총재의 자리가 막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행동을 사려깊게 하고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한다. 한은에 근무하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
-취임사에서 통화정책 이외의 한은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는데.
"한은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부정책을 산출할 수 있는 도구가 돼야 한다. 한은이 산출하는 정보를 토대로 (경제주체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시의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세계경제가 동태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흐름에서 뒤쳐지지 말고 함께 나가야 한다. G20 의장국으로서 전세계 국제금융질서의 '룰'을 형성하는 데 우리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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