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밤 백령도 서남단 해상을 경비하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승선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되었으나 실종자 46명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고, 침몰된 함정에 접근이 어려워 사고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
이처럼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천안함 수색과 실종자 구출작업에 투입됐던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소속 한주호 준위(53)가 지난 달 30일 순직했다. 나흘 동안 내내 탐색 작업에 참가했던 한 준위는 작업도중 호흡곤란으로 실신, 급히 물위로 끌어올려 구조함으로 옮겼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전설적인 'UDT 맏형' 의 죽음
그의 순직은 단순한 사고 소식이 아니라 '전설적인 UDT 맏형'의 죽음으로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18살 때 UDT 하사로 임관된 그는 35년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특수임무를 수행해 온 베테랑이었다. 18년 동안 교관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작년 소말리에 해적 퇴치를 위한 청해부대 파병 때는 최고령 장병으로 참여, 해적선에 뛰어올라 제압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제대를 2년 앞둔 그는 오는 9월 군복을 벗고 직업 보도반에 들어가 제대 후 인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번 작전에 자진해서 참여했다. "내가 베테랑이니 직접 들어가겠다. 조국과 해병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겠다" 면서 탐색작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하루 잠수하면 이틀 쉬게 되어있는 안전규정도 지킬 여유가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육군 중위인 아들과 통화하면서 그는 "작업이 힘들고 추웠다"고 말했고, 아들이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군인인 아들에게 아버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와 선후배들은 "군인을 천직으로 여기던 사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항상 모범이 되었던 사람", "후배들을 사랑하고 자상했던 교관"이었다고 그를 회고했다. 그는 소말리에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니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는 체력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죽어서 UDT의 전설이 되었고,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영웅은 살아있을 때 늘 악조건 속에서 싸워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UDT가 뉴스의 초점이 되면서 그들이 턱없이 부족한 장비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거센 물살과 높은 수압, 체온을 뺏어가는 해저의 찬 물 속에서 작업하는 그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실종자를 빨리 찾아내라는 아우성에 밀려 그들은 안전수칙을 지킬 틈도 없었다. 그들은 죽어서 영웅이 될 뿐 살아서는 기본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군과 정부 믿고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좀 더 조용해져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조급해도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다. 일단 군과 정부를 믿고 구조작업과 원인 규명을 지켜봐야 한다. 군과 정부의 수습책이 부족하고 불투명하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하지만, 황당한 추측과 유언비어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천박한 고질병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군과 정부는 투명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은 무엇이든 속이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다. 만일 군과 정부에 불리한 부분이 있다 해도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수습책은 없다.
곳곳에 영웅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침몰하지 않는 것은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천직으로 알며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웅 한주호, 그가 목숨을 바쳐 구하려 한 것은 구겨진 우리 시대의 양심이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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