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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절판'유언과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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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절판'유언과 혼란

입력
2010.04.0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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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객관적인 관찰자, 예를 들어 외계인이 법정 스님의 사망을 전하는 미디어의 보도를 보았다면? 먼저, 훌륭한 스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둘러싼 기사를 읽은 그는 아마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선승이 자신 이름의 책들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기다? 유언 이후 오히려 책을 사려는 사람이 몰렸고, 급기야 <무소유> 1993년 증보판은 110만원에 낙찰됐다. 책 판매가 중지되었다는 소문 끝에 올해 말까지는 판매하기로 결정되었다.

'무소유'와 '자아실현'

절판 소동은'무소유'를 둘러싼 혼란의 무대였다. 사람들은 그 혼란을 여러 시각으로 보았다. 순진한 시각부터 보자. "역시 훌륭한 스님이네, 죽음에 이르러서도 무소유를 실천하시네!" 조금 냉정하게 보는 시각. "그렇게 무소유를 실천할거면, 살아서도 아예 베스트셀러 책을 절판하는 게 낫지 않았나?" 조금 삐딱한 시각도 있다. "생전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큰 이름을 소유하던 스님이 죽음에 이르러서 조금은 부끄러우셨나 보네." 혹은 "책을 많이 쓰고 팔았던 유명 스님이 괜히 출판사들 힘들게 절판하라고 그래."

이 혼돈은 다만 소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의 미망일까? 그건 아니다. 돌아가신 분도 그 점을 생전에 나름대로 인식했던 듯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절판 유언까지 남기진 않았을 터. 물론 스님은 개인적으로는 검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소유를 말하는 저자, 더욱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스님은 생활 속에서 검소함을 실천하는 일과는 다른 긴장을 자신의 책에 대해 느꼈을 것이다.

역이나 공항 가판대에 전시된 자신의 책들을 보고 스님은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뿌듯해 했을까?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세상에서 자신의 책이 많이 팔린다고 스님이 그저 자부심을 가졌다면, 그리고 "<무소유> 책만은 소유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이 점점 깨끗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그분이 절판 유언을 남길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스님은 '무소유'를 말하는 베스트셀러도 미망이라고 느꼈는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소유를 잘 실천하지도 못하고 또 굳이 엄격하게 실천할 필요도 없음을 결국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과욕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혹은 과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도, 그 소유욕은 탐욕스런 나쁜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도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소유에 집착하곤 한다는 것을 스님이 몰랐을 리 없다.

또 자아실현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곁눈질하고 다투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스님이 몰랐을 리 없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쉽게 자아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만 그런 걸까? 아마도 그들에게 '무소유'를 설파하려는 자신도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스님은 깨달았을 수도 있다. 수행자들이 다 대중을 가르치려고 책을 쓰는 건 아니니까. 아예 저자가 되기를 멀리하는 수행자들도 있지 않은가.

낯 뜨거운 미디어 이벤트

사실 이 절판 소동의 배후에 미디어가 있다. 몇 주 전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미디어들은 '국민 여러분'의 감정을 부추기며 메달의 금빛에 미친 듯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 미디어들이 이번엔 '무소유'행사를 벌였다. 미디어들은 끊임없이 이벤트와 행사를 만드는 데 선수라고 하지만, 낯 뜨겁게 금메달에 열광하게 하다가 갑자기 거꾸로 탈속해야 한다는 듯 '무소유 이벤트'를 벌이다니, 심하다. 이렇게 찌질거리고 까불거릴 것인가?

임제 선사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무소유'를 만나면? 말할 것도 없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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