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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이뤄진 법정 스님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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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이뤄진 법정 스님의 바람

입력
2010.03.3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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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책이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요!' 하고 나를 찾아주는 꼬마에게 주고 싶다." 법정 스님이 서른아홉 살이던 1971년 한 수필에서 밝혔고, 유언장에도 남긴 작은 바람이 이뤄졌다.

법정 스님의 49재 3재가 치러진 31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이 말한 '신문 배달 소년' 강모(49)씨에게 스님이 남긴 책 6권이 전달됐다. 법정 스님이 1970~73년 서울 봉은사에 머물 당시 철부지 '꼬마'였던 공양주보살의 아들 강씨는 오십 나이를 턱 앞에 둔 중년이 됐다. 흰 보자기에 싸여 전달된 책은 불교 공안집인 <벽암록> ,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 석지현 스님의 <선시>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 , 생텍쥐페리의 <위대한 모색> , <선학의 황금시대> 등이다.

강씨는 "제 존재가 알려져 행여 스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며 자신의 신분 밝히기를 꺼렸다. 그는 "왜 스님께서 유품을 전달하라고 했는지 궁금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 시절 심부름을 했던 제게 스님이 마음의 빚을 졌다고 느끼신 것 같다. 스님께서 물려주신 책을 잃고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들은 제 개인 소유가 아니라 스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부대중의 것"이라며 "길상사가 필요로 하거나 원한다면 책들을 아무 조건 없이 다시 기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봉은사 신도라는 강씨는 "법정 스님 입적 소식을 접하고 어릴 때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며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스님은 울력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중 앞에 거의 나서시지 않았고 종무실에도 거의 들르지 않으셨기 때문에 제가 신문과 우편물을 전해 드렸다"며 "스님을 처음 뵌 이듬 해 봄에 스님께서 24가지 색 크레용과 도화지를 주셨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법정 스님은 강직하고 고고했습니다. 계율에 매우 엄격해서 어긋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도 승복을 위로 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상좌 덕진 스님은 "스님은 평소 작은 시은(施恩ㆍ은혜를 베풂)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강조하셨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또 하나의 큰 가르침을 남기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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