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와 균형을 중시한 그리스인들은 무엇보다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였다. 올림포스 신들은 인간의 오만에 유독 가차 없는 응징을 내렸다. 죽은 사람을 살려냄으로써 신의 영역을 침범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내린다던가, 신성이 어디 있냐며 케레스의 성스러운 떡갈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린 에뤼시크톤에게 기아의 신이 입김을 불어넣어 벌을 내린 이야기도 있다. 걸신들린 에뤼시크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집안 살림을 거덜 내고 급기야 딸까지 팔아먹었지만 계속 배가 고파 결국 자신의 팔다리를 뜯어먹고 죽는다.
미노스 궁전에서 탈출할 때 너무 높게 날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태양에 가까이 갔다가 화를 당한 이카로스의 이야기도 있다.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져 죽은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한계를 넘어버린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이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니오베 이야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테베의 여왕 니오베는 훌륭한 남편에다 슬하에 하나같이 준순한 아들 일곱, 딸 일곱을 두어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행복을 누렸다. 그런 니오베가 자신의 행복에 취해 그만 기고만장해져 아들 하나 딸 하나만 둔 레토 여신보다 자기가 훨씬 더 낫다고 자랑을 하였다. 자신들의 어머니 레토를 비웃은 니오베를 응징하기 위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우선 그녀의 일곱 아들을 모두 활로 쏘아 죽인다.
니오베는 피 묻은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는 "무정한 레토 여신이여, 후련하시겠습니다"라고 외친 후 "당신이 내 아들을 다 죽였어도 내겐 딸이 남아있으니 아직 내 자식 수가 당신 자식 수보다 많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곧이어 화살이 날아와 딸 여섯을 차례차례 꿰뚫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니오베가 막내딸을 치마폭에 감추고 "막내 하나만이라도 남겨주세요"라고 애원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니오베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누리는 행복은 보름달과 같아서 한 군데도 빈 곳이 없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것이냐? 나는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라고 뽐내던 니오베의 최후는 그렇게 처절하게 끝나고 말았다.
신화는 수천 년 된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문제를 담고 있어 읽을 때마다 놀라게 된다. MBC 사장을 쫓아내고 정권이 원하는 새 사장을 앉힌 자신의 힘이 얼마나 대견했으랴. 그러니 방문진 이사장이라는 이가 그 힘을 과시하고 싶어 새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좌파를 정리했다'고 자랑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단 그이뿐만 아니라 권력 중심부에 있는 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하다. 강남의 좌파 스님을 가만둬서 되겠느냐고 따진 집권당 원내대표의 말도 들려온다. 이들 사건은 권력을 쥔 이들이 권력에 취해 점점 오만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섬김과 겸손을 말하던 이들의 고개가 점점 뻣뻣해졌으니 그런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도 아마 이런 일들은 계속될 것이다.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부터 많은 이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대화와 타협 없이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나라가 시끄러울 듯하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반대가 있어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생각은 자신의 생각과 힘에 대한 오만이 아닐까. 그 오만의 끝은 어디인가?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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