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전세기 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밥 딜런(69)은 공연 대기실에 화이트 와인과 재떨이, 물을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온갖 복잡한 요구 사항들을 내놓는 보통의 해외 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국내 공연기획사 관계자가 "정말 그게 다냐"고 되물었을 정도였다. 딜런의 미니멀한 취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31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딜런의 첫 내한 공연은 담백했다. 검은 재킷에 흰 중절모를 쓰고 등장한 그는 노래와 연주에만 집중했다. 가끔 기타를 연주했고, 전자오르간으로 흥을 돋웠다. 왼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대형 콘서트장에 으레 설치되는 대형 스크린 조차 없었다. 20여 개 가량의 핀 라이트로 이뤄진 조명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직 노래만을 들려주겠다는 거장의 고집이 엿보였다.
딜런은 2시간 가량 동안 그의 이름을 드높여준 과거의 노래를 부르기보다 최근 히트곡을 불렀다.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기 보다 여전히 현역임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그는 '포크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서정보다 격정에 방점을 찍었고, 걸걸하며 큰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 부르는 노래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었다. 음유시인으로 40여 년 세계의 팬들을 흥분시킨 그의 저력은 6,000여명으로 가득 찬 객석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첫 곡은 'Rainy Day Woman'이었다. 컨트리 풍의 흥겨운 음악이 막 자리에 앉은 관객들의 귀를 자극했다. 조금은 굵고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나이를 가늠케 했지만 귀에 거슬리진 않았다. 이어진 'Lay Lady Lay' 'I'll Be Your Baby Tonight'는 서정성을 강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네 번째 곡 'The Memphis Blues Again'부터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고,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며 흥에 겨워했다. 예정됐던 열 일곱 곡의 공연이 끝난 뒤 그의 유명 히트곡 'Blow'in In The Wind'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의 반응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말을 아끼고 아꼈다. 관객들의 앙코르 연호가 있은 뒤 등장한 그는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Thank You Fans!)이라는 간단한 인사말만을 했다. 이어서 그의 공연을 도운 세션맨들의 이름을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에는 그저 고개를 몇 번 숙였고,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호응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거장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서울 공연을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게 마치고 한국을 떠났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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