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핵심은 인과론(因果論)이다. 세상 모든 일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경우란 없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진행,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가 원인과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설사 전체적인 틀에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결정적 원인이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중간중간 인과의 연결고리가 느슨한 곳이 있다면 이 또한 음모론의 배양조건이 된다. 그러나 완벽하게 통제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자연과학 실험이 아닌 다음에야 현실에서 이렇게 완결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 부분적 연결관계가 매끄럽고도 빈틈 하나 없이 설명되지 않으면 마침내 음모론은 거대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단계로 확대된다. 사건이 가져온 파장을 따져본 뒤, 결과적으로 현실적 이득이 돌아간 측에다 초점을 맞춰 거꾸로 의도를 추론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특정인이나 세력이 그 같은 결과를 얻으려 처음부터 치밀하게 모든 일을 계획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9ㆍ11테러로 미국 보수파의 입지가 강화되고 군사행동의 명분까지 얻게 된 상황을 보고는 미 보수정부가 9ㆍ11테러를 계획했거나, 최소한 알고도 묵인했다고 단정짓는 식이다.
■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도 단순한 의문 제기를 넘어선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승선경험이 있다는 '재야'전문가서부터 그저 방 안에서 머리나 이리저리 굴려봤을 수준의 어설픈 분석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의혹과 추론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음모론끼리 충돌하는 웃지 못할 경우까지 생긴다. 정부가 선거 등 당면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 또는 자체의 잘못을 떠넘기기 위해 북한 쪽으로 책임을 몰아간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거꾸로 정부가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려 북한의 공격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떠돈다.
■ 세부의혹 상당수도 무지와 억측에 의한 것이다. 가령 새떼로 전투기가 긴급 발진하는 일도 잦다는 걸 안다면 포 대응도 납득 못할 건 아니다. 선체노후→침수주장도 폭발음과 솟구침을 명쾌히 설명 못한다. 무엇보다 고의 구조지연 주장에선 분노마저 치민다. 해군의 판단ㆍ대응ㆍ장비 운용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전우를 죽게 놓아두라고 한단 말인가. 그건 순직한 한주호 준위를 포함한 모든 군인의 헌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지금은 일단 믿고 지켜보자. 허접한 음모론 따위로 더럽히기엔 병사들의 생명이 너무나 귀하고 아깝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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