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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리얼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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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리얼 러브'

입력
2010.03.3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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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씌어진 것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연극이 있다. 제작비 얼마라며 동그라미 경쟁을 하는 대형 뮤지컬의 메커니즘은 얼마나 친절한가. 그것들은 약간의 설명과 잘 만들어진 동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불친절'을 택한 무대들은 바로 그 상상력과 교감하기를 갈망한다.

대본으로도, 보도자료로도, 설명으로도 실제가 잡히지 않는 무대가 있다. 복잡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파파프로덕션의 '리얼 러브'는 단순한 무대 장치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메커니즘 만능의 시대, 단순함을 통해 오히려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독신 생활을 하는 30대 남녀의 솔로 탈출기다. 퇴근하면 전형적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가리키는 일본어)로 돌변하는 이들이 집에서 몰두하는 것은 PC통신. 때로 벽에 귀기울이며 옆방의 사람에게 호기심을 나타내지만, 문 밖을 나서서 어쩌다 마주치면 절대 타인이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 벽에 귀를 바싹 대고 있는 남녀, 두 배우의 마임에 객석은 벽이 실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서로를 자폐적 인간이라고 치부하는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실제 인간과 꼭 닮은 인형 리얼돌을 주문하는 것까지 닮았다. 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인형을 갖고 벌이는 행동은 판박이다. 돈을 주고 3개월 기한으로 들여온 인형의 육체를 탐색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번갈아 인형으로 변신하는 무대는 기민하다. 이 역시 대본만으로는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

장치라고는 의자 두 개가 전부인 이 무대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조명의 힘이다. 일체 다른 불빛 없이 각각의 남녀에 내리꽂히는 두 개의 핀 조명은 객석이 자연스레 그들의 관계 양상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원룸, 모텔방 등 갖가지 방을 나타내는 공간 역시 네모꼴의 조명으로 처리되는데, 이 네모의 빛은 두 사람의 내면적 상태나 관계까지도 효과적으로 상징한다.

그리고 분리됐던 조명이 가운데의 커다란 네모 하나로 합쳐지면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간다는 등의 공간 운용에서 이 연극의 치밀한 연출 전략이 드러난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사실적 무대가 관객에게서 상상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일깨워 준다. 4월 18일까지, 행복한극장.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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