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대대적인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자 확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담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MSC)에 부서별로 영입 숫자를 정해주는 등 인력 할당을 실시해 업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할당 숫자를 채우기 위해 벤처 업체까지 접촉해 개발자를 빼내갈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인력 할당, 개발자 데려와라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스마트폰 관련 경력직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영입하기 위해 MSC내 관련 부서별로 영입 숫자를 지정하는 인력 할당을 실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로 모바일과 웹 분야의 경험있는 개발자를 100명 이상 영입하기 위해 부서별로 데려와야 할 인원 숫자까지 정해줬다"며 "적은 부서는 수 명에서 많은 부서는 10명이 넘어간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로운 개발자를 육성하거나 신입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직을 뽑다 보니 다른 업체에서 인력을 데려올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모바일과 인터넷 분야의 개발 경험이 있는 벤처기업들이 주 대상이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맥을 동원해 개발자를 추천하라는 주문"이라며 "무턱대고 아무나 추천할 수 없으니 평소 눈여겨 본 벤처업체 등 타사 개발자를 접촉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개발자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삼성전자로 몰리면서 국내 벤처 생태계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벤처기업들은 이미 삼성전자 직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A사 사장은 "회사를 키우는데 기여한 개발실장과 핵심 개발자 등 2명이 연락을 받았다"며 "두 사람이 빠져 나가면 사실상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데, 대기업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없어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모바일 관련 업체 B사 사장도 "삼성전자와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만남을 가진 적이 있는데 당시 동석했던 후배 개발자가 삼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이것은 대기업이 주장하는 상생과 거리가 멀고 벤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짓"이라고 분개했다.
경영진의 위기 의식 및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 차원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력직 개발자 확보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급격히 부상하며 내부에 위기 의식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최근 경영에 복귀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다. 글로벌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위기 의식을 강조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도 아이폰이 지난해 11월 말 출시 이후 4개월 만에 50만대 가까이 팔리자 "충격적이고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아이폰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비결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애플에서 아이폰용 온라인 장터인 '앱스토어'를 만들고 수 많은 응용 소프트웨어가 거래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휴대폰 제조 기술과 판매는 급성장했으나 소프트웨어는 소홀히 했다는 안팎의 지적을 받았다.
이 같은 지적과 경영진의 위기 의식이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 개발자 영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한글과컴퓨터 출신의 강태진 KT 전무를 MSC로 영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이폰 등장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절실해졌다"며"반면 휴대폰 소프트웨어 업계 전체에 걸쳐 개발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수시로 추천하는 분위기"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업게에서는 삼성전자의 행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물론이고 IT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만이 할 수 있는 장기적인 개발자 육성과 벤처업계 지원을 통한 공동 개발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