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사위, 제 며느리를 고른다는 엄마의 심정으로 나서는 걸요. 이래봬도 평생 교사로 일해서 사람 보는 눈썰미는 있거든요."
10년 전 교직을 떠난 이수길(57)씨는 일주일에 세 번 중매쟁이로 변신한다. 커플 매니저라는 그럴싸한 직함도 갖고 있다. 정작 본인은 연애결혼을 했고, 아직 미혼인 딸을 둘이나 거느리고 있건만 1년 넘게 미혼 청춘 남녀를 이어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멍석은 서울 서초구청이 깔아줬다. 서초구는 지난해 1월 이색적인 민원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OK민원센터'에 결혼중매 상담코너를 만들었다. 현재 이씨는 구청의 유일한 커플 매니저다. '중매는 잘해야 술이 석잔, 못하면 뺨이 석대'라고 하니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
실제 이씨는 어렵게 성사시켜 준 만남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불만 섞인 항의전화도 가끔 받는다. 대부분 외모 탓을 한단다. 이씨는 "상대가 못 생겼다고 시선을 아예 마주치지 않거나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다"라며 "평생 배필을 만나는 일인데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남녀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는 다음달 1년여 상담의 첫 결실을 보게 된다. 지난해 10월 이씨의 끈질긴 소개로 만난 대기업 사원 안모(34)씨와 간호사 김모(32)씨가 다섯 달의 열애 끝에 4월의 부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씨가 탄생시킨 '1호 부부'인 셈.
이씨는 자신이 맺어준 커플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양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같고 자동차 번호도 순서만 다를 뿐 숫자 4개가 똑같았어요. 심지어 김씨의 병원 사물함에 낙서처럼 적혀있던 이름이 예비신랑과 같지 뭐에요." 커플 매니저는 다리를 놔줄 뿐 그 위에서 연을 맺고 평생을 약속하는 건 당사자들이라는 설명일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예비부부의 감사인사와 함께 청첩장을 받고 "마치 제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처럼 뿌듯했다"고 말했다. 1호 부부뿐 아니라 현재 이씨의 주선으로 다섯 쌍이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고 있고, 7월에는 '2호 부부'(남자 은행원과 여교사) 탄생도 예정돼 있다.
결혼정보업체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 750여명의 선남선녀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을 정도로 서초구의 결혼중매 서비스는 호응을 얻고 있다. 이씨의 가방에는 회원들의 인적사항과 이상형, 배우자 조건 등을 담은 매칭(matching) 카드가 빼곡히 정리돼 있다. 그는 "카드 내용을 꼼꼼히 살핀 뒤 서로 만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본 뒤 연락처를 알려주는 식으로 연결해 준다"고 설명했다.
미혼 남녀가 직접 찾아오기도 하지만 주로 이씨를 찾아오는 이들은 미혼 자녀를 둔 부모들. 이씨는 "부모들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탄탄한 직장인 등 경제적 요건을 많이 따지는 편이고 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모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결혼 적령기가 지난 미혼 남녀가 많고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저출산으로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상담 코너가 작은 해결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중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매주 월 수 금요일 오후 2~5시에 OK 민원센터를 방문하거나 인터넷(cafe.daum.net/name7)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서초구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다만 4,5월은 잠시 쉰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결혼 상담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중단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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