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입 자율화, 대학 선진화 2년을 말한다] <10> 이상범 서울시립대 총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입 자율화, 대학 선진화 2년을 말한다] <10> 이상범 서울시립대 총장

입력
2010.03.31 00:03
0 0

"도시과학·세무 분야 집중적 특성화, 1회성 개혁보단 지속적인 변화"

서울시립대는 강소(强小) 대학의 전형으로 꼽힌다. 입학 정원이 1,800여명에 불과하지만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데)'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연유에서다.

교육역량강화사업, BK(두뇌한국)21 사업, 특성화 우수대학 선정 등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하는 주요 고등교육 분야 사업에 모조리 이름을 올렸다.

다른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특성화도 이미 2년 여 전 일찌감치 마무리 했고, 특히 조경학 환경공학 등 도시 과학 분야와 세무 분야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서울시립대를 8년째 이끌고 있는 이상범 총장은 "급하게 개혁을 추진하면 반드시 뒤탈이 난다"고 말했다. 이른바 '속도론'을 경계한 것이 서울시립대의 성공 비결이라는 뜻으로 읽혀졌다. 일시에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내실을 기하면서 꾸준히 개선에 나서야 대학 개혁이 성공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소신이다.

이 총장은 "점진적인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개혁'보다 '지속적인 개선'이라는 용어에 애착이 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서울시립대가 서울시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지만 실질적으론 국립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장은 "동문들이 내는 발전기금에 대해 정부가 10만원까지 세금을 공제해주면 재정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며 나름의 재정 문제 타개책도 제시했다.

_10만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쌓이면 재정에 꽤 도움이 되겠네요.

"일단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고 봐요. 동문들의 기부금을 10만원까지 세금 공제를 해주면 기부 활성화는 물론이고 재정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쌓인 기부금은 주로 장학금에 사용할 생각이예요. 그것(동문 소액 기부금)만으로도 큰 여유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장학금에 지원될 돈은 일반 예산으로 돌릴 수 있게되는 셈이지요."

_재정 여건은 좋은 편 아닌가요.

"서울시로부터 지원이 잘 되고 있는 편이지요. 하지만 등록금을 2년간 동결했고, 기성회비도 2년간 동결됐어요. 긴축 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요."

_등록금을 계속 동결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인가요.

"기본적으로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경쟁력을 올리는데 돈은 당연히 필요해요.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은 크게 3가지, 즉 등록금, 정부 지원, 기부금 등이지요. 알려져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크게 못 못치고 기부 문화도 활성화 돼 있지 않아요. 결국 등록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 등록금 수준은 지나치게 높은 편입니다.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등록금이 우리보다 저렴해요. 우리나라가 가계소득에 비해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싼 것은 부인하기 힘들어요."

_등록금을 어느 선 까지 낮춰야 하나요.

"무작정 낮출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에서 등록금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일단 등록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봐요. 대신 정부 지원과 기부를 늘려야 해요. 10만원 세액 공제 혜택 방안도 이런 측면에서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소액 기부에 세제혜택을 주면 적어도 동문들의 대학 기부 문화는 빠르게 정착되지 않을 까 싶어요."

이 총장은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했다.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대학 및 학생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학에 재정 도움을 주는 것은 어렵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경쟁력 없는 대학을 통폐합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대학을 나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맞는 일자리를 정부가 만들어줘야 하는데, 학생 기대치는 잔뜩 높여 놓고 일자리는 없어요."

_부실 대학, 경쟁력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대학은 없애야 하나요.

"고등교육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경쟁력 없는 대학의 폐교와 함께 몸집 줄이기가 이뤄져야 해요. 개인적으론 앞으로 많은 대학들이 통폐합 할 것으로 생각해요. 학생 수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에 (학교 규모 등이 유사한)대학들이 합쳐 학생수를 줄이는 대신 교수 수는 유지할 경우 교육의 질은 그만큼 높일 수 있을 겁니다."

_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연적이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사실 개별 대학의 목표는 대학경쟁력 강화라고 여기고 있어요. 교수 사회가 변해야 하고 학사 조직도 개편돼야 해요. 그런데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 있어요. 구조 개혁시 단순히 비인기학과와 기초학문 등을 통폐합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인문학이나 기초학문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는 '기초학문이 사는 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ㆍ공립대와 사립대가 역할을 분담하면 기초학문의 생존 수준을 넘어 발전으로 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초 학문 등 필수학문은 국ㆍ공립대가 책임져야 해요. 사립대는 실용학문 위주로 나아가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게 필요합니다."

_서울시립대는 어떤가요.

"우리는 규모가 작아요. 문어발식 확장을 하지 않았어요. 학과 구조상 문제도 국ㆍ공립대 중에서는 드물게 없어요. 이미 1990년대부터 구조개혁을 진행했고, 지금은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1회성 개혁보다는 충격적이지 않고 꾸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_추가 구조개혁의 필요성은 없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졸업인증제를 더 강화하고 복수전공도 상당 부분에서 의무화 할 생각이예요. 교수들의 강의와 연구에 인센티브도 확대했어요. 봉급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통해 차등을 두면 강의ㆍ연구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걸로 보고 있어요."

_서울시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발전적인 측면에서 법인화를 포함해 여러가지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구성원들은 법인화 이후 재정이 일단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염려 하고 있어요. 일본의 경우 법인화 이후 지원을 매년 1%씩 줄였어요.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어요. 그런데도 불안감은 여전해요. 계속 지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대학의 자율성 신장을 위해 법인화를 하겠으나, 결과적으론 재정 지원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어요."

이 총장은 법인화 문제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긴 했으나, '조건'을 달았다. 법인화 작업이 진행 중인 서울대의 결과를 보겠다는 것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서울대 법인화 법안의 통과 여부를 본 뒤 법인화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_특성화 양태가 다른 대학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대학이 모든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서울시립대는 도시관련분야(도시과학)와 세무학을 집중적으로 특성화 했지요. 도시

관련분야는 90년대부터 일관되게 추진했어요. 서울시가 설립한 대학인만큼 도시분야를 먼저 시작한 겁니다. 도시과학대학, 도시과학대학원, 도시방제안전연구소 등을 만들었어요. 인문학 분야의 도시인문학 연구소 등도 갖췄어요. 세무학과는 대한민국 최초의 4년제 세무 전공 분야입니다. 지방세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지방세 연구소가 있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도 조세법을 특화해 교육시키고 있어요."

서울시립대의 특성화는 정평이 나 있다. 2003년부터 6년 연속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특성화 대학이었고, 도시 과학 분야는 국제 인증을 획득했을 정도다.

_롤 모델(Role Model)로 삼을 만한 외국 대학이 있는 지요.

"미국에서 주립대는 우리의 국립대 격이지요. 하지만 뉴욕시립대는 뉴욕주립대보다 먼저 설립됐어요. 대학의 순위도 높아요. 하지만 뉴욕시립대는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서울시립대가 뉴욕시립대를 롤모델로 삼기는 부담스럽습니다. 일본도립대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결국 운영 형태는 다르지만 뉴욕시립대나 일본도립대 같은 대학 처럼 강한 특성화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요."

_입학사정관 전형은 성과가 있었나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 때 두 가지를 고려했어요. 해당 전공에 소질이 있는 창의적이고 열정을 가진 학생을 뽑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특히 후자(後者)와 관련해서는 성적이 다소 낮더라도 잘 키우면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학생을 발굴해 내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올해 입학 정원의 10%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은 서울시립대는 1단계에서 4 ~7배수를 추려낸 뒤 심층평가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 이 총장은 "성적만 봤다면 떨어졌을 학생들이 30~40% 가량 합격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의과대학 신설 당위성도 언급했다.

_의대 신설을 검토하는 이유를 공공의료서비스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까요.

"서울시의 공공의료서비스를 보다 체계화하고, 공공의료의 질을 개선하려면 서울시립대에 의대가 설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립병원은 많지만 공공의료 분야에서 특화된 의사를 육성할 대학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제대로 된 인력을 배출하는 역할을 서울시립대가 맡아야 합니다. 일반 의대 설립은 의미가 없어요. 보건소부터 시립병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공의료기관에 공급할 의료인력을 서울시립대 의대에서 키워내자는 것이지요."

이 총장은 교수와 직원들 사이에 '워커홀릭(일중독)'으로 불린다. 그러면서도 거부감이 없다. '점진적인 변화'가 그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개선(변화)를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정리=박철현기자 karam@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