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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11> 소풍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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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11> 소풍에 대한 기억

입력
2010.03.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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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어머니는 외갓집이 있는 시골로 옷 보따리를 이고 장사를 떠나셨지요. 한번 보따리를 이고 나가시면 사흘이 걸리건 열흘이 걸리건 옷이 다 팔려야 돌아 오셨습니다.

그날, 소풍가기 전날, 초량 도가(都家: 동업자들이 모여서 계나 장사에 대해 의논을 하는 곳) 로 화투치러 나가시는 아버지께 "나, 내일 소풍 가요" 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소풍 가는 날 아침까지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냄비에 남아 있는 찬밥을 숟가락으로 파 먹고 내 손으로 교복을 다려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소풍은 초등학교 3학년의 나에게는 세상과 만나는 멋진 나들이였습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네 마을 어귀 구멍가게 앞에서 한참 서성이던 나는 불쑥 들어가 "아저씨, 나 소풍 가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요. 외상 줄 수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카스테라 두 개와 담배 한 갑을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혀를 차며 현금 삼천 원을 더 빌려 주셨습니다.

하여튼 나는 그날 교복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혼자 소풍을 갔습니다. 우리가 소풍 간 곳은 부산 동래 정씨 무덤이 있는 언덕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엄청나게 큰 죽음의 봉분 사이를 철없이 뛰놀았던 것이고, 그 큰 무덤들이 우리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였던 셈이지요. 나는 외상으로 마련한 담배 한 갑을 담임 선생님께 상납하고 필사적으로 뛰놀았던 것 같습니다. 카스테라는 점심 시간 바위 틈에 숨어서 먹어 치웠습니다. 내 짝 어머니가 싸온 김밥과 닭고기를 같이 먹자고 몇 번이나 불렀지만 끝까지 사양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엉뚱하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구멍가게 아저씨가 소풍가면 돈이 필요할거라며 빌려준 3,000원으로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 학생들 소풍 대열을 따라 다니던 사진사가 있었고, 나는 문득 사진 찍기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결혼 직후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찍힌 내 표정이 너무 어둡고, 그때의 기억이 수치심과 상처로 남아 있어서 슬쩍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그때 상당수의 사진이 내 손으로 증거 인멸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은 이 사진 한 장 밖에 없습니다. 자칫 증거 소멸될 뻔 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 모습은 쓰레기통을 치우시던 어머니에 의해 구제되었습니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내 모습을 주워 곱게 다려 내 사진첩에 다시 끼워 넣으신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두 모습이 정말 흑백의 대비처럼 대조적입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내 친구는 편안해 보입니다. 얼굴이 희고 잘 생긴 모습입니다. 카메라를 대하는 표정 또한 아무 생각 없습니다. 느슨하게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무게 있고 당당합니다. 이 친구는 내 기억에 의하면 우리 반에서 잘 생기고 공부 잘 하고 리더십이 있는 학생입니다. 성격 또한 아주 호탕하고 여유가 있어서 어디 가도 세인의 주목을 받을 인상이지요. 그래서인지 모자도 쓰지 않고 물병 같은 것도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날도 내가 같이 사진 찍기를 권할 때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이었을 뿐 친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가 내게는 없습니다. 만화가 박재동 형도 초등학교 동창이고, 그네 집이 잡화점을 겸한 만화방이어서 자주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정작 박재동 형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마 외톨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옆 울상을 짓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십시오. 아, 완전히 겁먹은 표정이네요. 모자를 쓰고 물병까지 가로질러 찼는데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두 다리를 바싹 붙이고 앉았는데 몸이 삐딱하게 기울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입도 삐뚤어지고 코도 삐뚤어지고 시선 자체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못 생기고 초라해 보일 수도 없습니다. 크지도 않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 보는데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런데도 왜 나는 빌린 돈 3,000원으로 사진을 찍으려 했을까. 아득한 기억 저편을 더듬어 가면, 수줍은 모습으로 같이 사진 찍기를 원하는 내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하고 사진 한 장 같이 찍을래?" 불안한 느낌으로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느껴지고, 별스런 생각 없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선선히 응해주는 내 짝의 대수롭잖은 태도가 읽힙니다. 나는 원하고 그는 응해 줍니다. 그래서 나는 절박하고 부끄럽고 그는 편안하고 별스럽지 않은 표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오래된 무덤 앞 돌비석 바닥입니다. 두 소년은 남의 무덤을 배경으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뺐?있습니다.

나는 이 사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내 깊숙한 내면(內面)을 들킨 것 같아서 얼른 구겨 버렸던 것입니다. 친구의 모습은 손상하지 않고, 내 모습을 빗금 쳐 구겨 버린 내 손아귀에 어린 시절 그늘진 고집과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을 상당히 오랫동안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숨기려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려 했던 것이지요. 그 점에서 연극을 선택한 내 삶은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에 대한 나의 생각 또한 분명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이 없는 자는 연극을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에 대한 수치와 혐오가 가면을 쓰게 하고, 가면을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면을 쓴 광대는 웃는 표정이지만, 그 눈은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을 드러낸다.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한 만큼 꿈이란 상상력으로 채우고, 외롭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다. 그래서 광대는 남을 웃기고 울리는데, 사실 자신이 웃고 우는 것이다.

연극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을 극복해 내려는 고집스런 삶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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