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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총재님이 말하면 시장은 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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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총재님이 말하면 시장은 들을까요

입력
2010.03.2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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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총재님(이틀 뒤면 취임하실 테니 그냥 이렇게 호칭하겠습니다).

꽤 놀라셨을 겁니다. 총재 내정 발표가 나자마자, '출구전략은 물 건너 갔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금리는 순식간에 폭락하고. 아마 지난 2주 동안 시장 반응을 지켜보면서, 총재님께선 당혹감과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사실 총재님에게 '공직'은 낯선 자리가 아니지요. KDI원장, 경제수석, OECD대사, 여기에 중앙은행 총재까지 더하게 됐으니 과연 이보다 화려한 공적 이력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총재님께선 혹시 한은 총재도 여러 고위공직 가운데 하나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은 아닌지요.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하고, 몸 던져 일하고, 임명권자를 잘 보필하는, 공직자로서의 그런 '모범적 덕목'만 잘 지키면 족하다고 믿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은 총재도 공직자입니다만 공익의식과 근면성, 충성심만으론 곤란합니다. 끊임없이 시장과 교감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한은 총재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아마도 '시장을 이끄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장관이나 경제수석이었다고 치죠. 말 한번 잘못했을 때, 치러야 하는 최악의 대가는 대통령의 질책이나 야당의 비난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한은 총재는 표현 하나에도 금리 주가 환율이 출렁거리고 수조~수십조원이 움직입니다. 정말 무거운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시장은 아직 총재님을 잘 모릅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인지, '디플레이션 파이터'인지 조차 모릅니다. 그냥 'MB맨 김중수'로만 인식하고 있지요. 중앙은행 총재를 '경제관' 아닌 '경력'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넌센스 같지만, 어쨌든 그게 현실입니다.

총재님의 이 'MB맨'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금리를 안올리면 "친정부여서"라 할 것이고, 올리면 "정부와 사전교감이 되어서"라고 할 테지요. 뭘 해도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일 겁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총재님과 시장과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얘기 나와서 말이지만, 정말 소중한 가치입니다. 한은이 쟁취한 전리품도, 정부가 선심 쓴 하사품도 아닙니다. 모든 경제주체가 노력하고 자제하면서 일궈낸 값진 결실이지요. 총재님의 진의가 와전됐다고 믿습니다만, 이 점에서 "성장과 물가는 대통령의 선택"이란 식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봅니다. 대통령 의중만 받들 요량이라면, 통화정책을 그냥 재무부가 맡아서 하지 뭐하러 중앙은행을 따로 두었겠습니까. 한은 총재가 '투사'는 아니지만, 때론 정부 혹은 통치권자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취임하시면 우선 시장과 대화하는 법, 그리고 독립적 이미지를 다지는데 주력해주셨으면 합니다. 금리를 언제 올릴지는 오히려 부차적 문제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린스펀이 말하면 시장이 들었던 것처럼(When Greenspan talks, the markets listen), 하루빨리 총재님의 말을 시장이 제대로 듣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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