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모르면 열에 열은 연극인이 아니다. 연극 '비언소'와 '늙은 도둑이야기' 등을 연출했고, 대학로의 대표 극단 차이무를 이끌어온 연출가 이상우(59)씨가 영화 '작은 연못'(15일 개봉)을 내놓았다. 이순을 눈앞에 두고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령 데뷔 감독"이 된 그는 "감독이 되겠다고 시작한 영화는 아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작은 연못'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에서 일어난 '노근리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군이 민간인에게까지 총알을 쏟아 부어 300여명의 애먼 희생자를 부른 사건이다. 한동안 이 사회에선 없었던 일로 치부됐던 이 사건은 '작은 연못'을 통해 스크린에서 부활한다.
이상우 감독은 당초 메가폰을 들 생각이 없었다. 여러 감독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가떨어지면서 2003년부터 시나리오를 쓰던 그에게 제의가 들어왔다. "쓴 사람이 해결하라"는 말에 "그럼 내가 하겠다"며 나섰다. "캠코더 촬영 한번 해보지도 못한, 기계랑은 친하지도 않은" 그는 그렇게 감독이 됐다.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정확하면 스태프들이 알아서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촬영 장소를 물색하며 최진웅 촬영감독에게 '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 카메라 장난을 치지 않는 영화, 그냥 정직하게 찍어서 정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전쟁 중 벌어진 양민학살을 그릴 땐 그렇게 해야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작은 연못'은 담백하다. 누군가의 잘못을 적시하려 하지 않고, 그날 그곳에서 있었던 비극을 담담히 전한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구호를 내세우려 하지 않아 되려 울림이 크다.
제작비는 10억원 가량이었다. 전쟁영화를 찍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십시일반으로 찍어야 했다. 문성근 송강호 김뢰하 문소리 유해진 등 거의 모든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연기 봉사'를 했다. 대부분이 이 감독과 연극을 했거나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배우들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평소 이 감독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던 배우들의 자녀들이었다.
"평소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끼리 작업을 핑계로 노닥거린 것이다. 매일 막걸리 마시고 개울가에 앉아 돼지고기 구워 먹으며 찍었다. 뢰하 결혼식 때문에 하루 쉬었는데 다들 버스 타고 서울 식장에 갔다가 뢰하랑 신부랑 데리고 다시 촬영장으로 와 촬영을 재개했다. 신혼여행 대신 모텔을 잡아줬고 신부는 곧바로 배우로 합류하게 됐다."
개봉도 십시일반이다. 대형 배급사들이 손사래를 치자 독립영화 배급사 40여개가 모여서 '작은 연못 배급위원회'를 구성했다. 관객들은 성금으로 영화의 더 많은 극장 개봉을 돕고 있다. "2006년 촬영에 들어간 땐 2007년 개봉할 줄 알았다.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었는데 결국 2010년까지 넘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처럼 영화를 만들 생각도 못했고, 만들 수도 없다고 봤다. 난 감독이 아니라 사람들을 묶어 주는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내 개인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의 그 무엇으로 여기까지 온 듯하다. 극단을 운영하면서 못 느꼈던 묘한 경험을 이번 영화로 하게 됐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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