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실종자를 구하려는 군의 필사적 노력은 29일 하루 종일 계속됐다. 해난구조대(SSU)는 전날 저녁 함수(艦首)에 이어 이날 오전에는 함미(艦尾)에 표식을 위해 물에 뜨는 부위를 달았다.
특히 실종자들이 몰려 있을 함미에는 서둘러 로프와 인도색(와이어)를 설치했다. 사실상 24시간 쉬지 않고 구조를 하기 위해서다. 국방부 관계자는 "물에 떠내려가는 한이 있어도 로프를 붙잡고 구조 작업을 펼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군이 추정한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 시간은 이날 오후 8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낮 12시 50분께 구조대를 태우고 인천 옹진군 백령도 용기포를 출발한 3.5톤급 해군 YF수송정이 굉음을 내며 20여분간 바닷길을 내달렸다.
바다에 정박해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3,000톤급 구조함 광양함을 끼고 오른편으로 돌아서니 붉은색 선명한 부이가 눈에 띈다. 함미는 이곳에서 수심 40m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도착한 구조원들은 소형 고무보트에 4, 5명씩 나눠 탔다. 2명이 조를 짜 물에 들어간 뒤 15분 정도씩 작업을 한다. 하지만 오르내리는 시간을 빼면 실제 작업 시간은 7, 8분에 불과하다.
한꺼번에 들어가면 작업이 더 빠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건 오산이다. 해군 공보담당 임명수 소령은 시야가 너무 흐리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잠수 요원이 2명씩 투입되고 다른 사람들은 이 둘의 안전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임 소령의 말 대로 서해의 격한 물살이 검은 흙탕물로 용솟음치며 구조대의 앞길을 막았다. 시정이 가장 양호해도 30㎝에 불과했다. 손목에 찬 시계의 숫자가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물 아래로 5m 정도 내려가니 아예 눈앞이 깜깜했다. 이러면 라이트가 달린 수중탐지장치는 무용지물이다.
물 속에서 쓸 수 있는 음파나 적외선 장비도 없다. 그러니 오로지 손끝의 촉감과 두 귀를 휘감는 소리에 의존할 뿐이다. 군 관계자는 "밖에서는 구조 작업을 서둘러 하라고 난리지만 실제로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라며 "실종자 구조를 생각하면 분초가 급한데 우리도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선체에 도착하자 먼저 쇠망치로 함정 바깥을 두드려 반응이 있는지를 살폈다. 그 다음 조심스럽게 물살을 가르며 선체 안팎을 조사한 뒤 혹시 선체 외곽에 나와있을지 모르는 실종자를 탐색했다. 광양함의 심해잠수장비도 동원됐다. 갇혀 있는 승조원들이 원활히 숨을 쉴 수 있도록 고무호스를 연결하려 했지만 물살이 거세 여의치 않았다.
함미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뻘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선체 뒤쪽 3분의 1 정도가 뜯겨져 나간 부분이다. 왼쪽으로 90도 기울어진 채 서해의 격한 물살을 벌써 사흘째 온몸으로 맞으며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26일 밤 사고 해역에서 북쪽으로 약 200야드(183m) 떨어진 곳이다.
선체를 한참 더듬던 구조대원의 손바닥에 거칠한 쇳조각의 촉감이 느껴졌다. 폭발 사고로 구멍이 난 부분이었다. 안쪽으로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잘하면 들어가 볼 수도 있지만 잠수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섣불리 행동하는 것은 무리다.
구조대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공간을 찾았으니 격실 어딘가에 생존자들이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빠르고 안전하게 물 밑에 들어가 실종자를 구하려면 인도색를 설치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수십m에 달하는 줄을 끌고 물속을 헤쳐 가려니 이번에도 거센 물살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앞뒤로 휩쓸리기를 여러 번, 마침내 함미의 끝부분을 잡고 인도색을 매달 수 있었다.
물 위에서도 대규모 지원 작전이 펼쳐졌다. 1만4,000톤급 독도함을 중심으로 해군과 해양경찰청 함정 수십여 척이 구조대원 주변을 바삐 움직였고, 주한미군도 15명의 잠수사와 구조함인 살보함을 현지로 보내 힘을 보탰다. 창공에는 링스헬기가 떴고, 민간 구조 요원 수십 명도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낱 같은 희망은 조금씩 사그라졌다. 구조대원들이 돌아가며 망치로 두드려도 배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제 배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탐색 작업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곧 수평선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작업 속도는 더뎌졌다. 안타까운 시간은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백령도=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