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수천건의 가톨릭 성직자 성추행 관련 소송을 맡아 피해자들에게 수천만달러의 보상금을 받게 해준 미국인 변호사가 이제 교황을 법정에 세우려 하고 있다. 미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시의 제프 앤더슨(62)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앤더슨 변호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996년 바티칸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 당시 미국 밀워키의 로렌스 머피 신부의 성추문을 알고서도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신앙교리성은 가톨릭 사제들의 범죄를 재판하는 기관으로, 당시 장관이던 베네딕토 16세가 이 사건을 묵살해 피해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교황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머피 신부가 1950~1975년 청각장애 소년 200여명을 성추행했다"는 밀워키 대주교의 보고에 대해 요제프 라칭어(교황의 본명) 신앙교리성 장관이 교회법 회부에 반대했다. 머피 신부는 1996년 라칭어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난 이미 신에게 사죄하고 벌을 받았다. 늙고 병들어 성직자로서 명예롭게 보내고 싶다"고 호소했다. 2년 뒤 그는 교회법과 형법상 어떤 처벌도 없이 성직자 신분으로 사망했다.
AP통신은 28일 "앤더슨 변호사가 교황에 직접 심문하길 원한다"며 "바티칸에 제시할 문서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앤더슨의 성직자 성추행 관련 소송은 198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여덟살인 딸이 가톨릭 사제를 지낸 물리치료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이 계기다. 관련 조사를 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성직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성추행이 성직자들 사이에 고질적인 문제임을 알았고, 바티칸이 이를 직시하지 못하면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앤더슨의 바람대로 교황이 법정에 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어렵겠지만 바티칸이 문제 성직자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여주는 문서로 판사들을 설득할 것"이라며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크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8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낭설에 겁먹지 않을 용기로 인도해준다"고 밝히며 성직자들의 성추문으로 불거진 가톨릭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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