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말은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속설 가운데 하나다. 특히 아이스하키에서 정확히 들어 맞고 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가 좋은 예다. 그레츠키는 2005년 NHL 피닉스 카요티스 지휘봉을 잡았지만 네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끝에 지난해 지휘봉을 반납했다.
그러나 심의식(41) 안양 한라 감독은 이 같은 속설을 깨뜨렸다. 현역 시절 '한국의 웨인 그레츠키'라고 불렸던 그는 감독 데뷔 두 시즌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르며 한국 아이스하키사를 새로 썼다.
심 감독이 이끄는 한라는 지난 28일 홋카이도 구시로에서 열린 2009~10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제지 크레인스에 5-4로 역전승, 한국 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현역 시절 이루지 못했던 아시아 정상의 꿈을 이룬 심 감독을 만나 '초보 사령탑 성공기'를 들어봤다.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라는 5차전 3피리어드 종료 17초 전까지 3-4로 지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피가 마를 법 하다. 그러나 심 감독은 1초도 패배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두 시즌 동안 선수들이 보여준 역량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 감독이 꼽는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2연승 후 2연패를 당해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의 정신 무장이 워낙 투철했고 지난 시즌을 거치며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심 감독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경험 부족 탓에 막판 집중력이 떨어져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며 선수들에 대한 진한 애정과 신뢰를 표현했다.
긍정의 힘을 실감하다
심 감독은 낙천적이다. 웃음도 많다. 심 감독의 이 같은 '긍정의 힘'은 한라가 우승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심 감독은 하이원과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우승의 최대 고비로 꼽았다. 1차전 패배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됐다고 한다. 단기전 승부를 좌우하는 홈 1차전에서 패배한 심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고 다독였다. "마음 편하게 먹고 한번 최선을 다해보자"고 선수들을 격려했고 한라는 이후 플레이오프 5연승 가도를 달렸다.
정규리그 MVP 패트릭 마르티넥은 1차전에서 무릎을 다쳐 시즌을 마감했다. 공격력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이는 없었다. 심 감독은 마르티넥의 공격력을 포기하는 대신에 그 공백을 젊고 빠른 선수로 메우며 상대 1라인을 압박해 수비 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되도록 했다. '발상의 전환'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카리스마가 능사는 아니다
명감독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냉혹한 승부사'다. 그러나 심 감독은 이런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어깨에 힘주는 것을 워낙 싫어한다. 이 때문에 심 감독이 처음 감독으로 부임할 때 일부에서 '팀 장악력'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 감독은 굳이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훈련과 경기 때는 엄격해야겠지만 감독이라고 계속 무게만 잡는다면 팀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심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과 농담도 나누며 친근하게 다가섰다. 그러나 기강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신상필벌 탓이다. 심 감독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경기에서 배제했고 팀 공헌도가 높은 이는 기용 시간을 늘렸다. 김근호, 김원중, 이유원, 정병천 등 3-4라인 선수들의 팀 내 비중이 높아지며 팀 전력이 두터워진 것은 이런 심 감독의 용병술 탓이다.
심 감독은 선수들이 '알아서 해줄 때'가 가장 뿌듯하다.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때 감독된 보람을 느낀다. 심 감독이 두 번째 시즌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우승 트로피보다 하나로 뭉친 팀을 확인한 것이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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