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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 참여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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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 참여자 찾았다

입력
2010.03.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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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상을 만들던 당시에는 재료가 없어 놋그릇을 녹여 사용했고, 기술도 부족해 내부 전체를 용접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여건이 동상 균열의 원인 같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1968년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건립한 작업자들이 장군상 보수를 위해 40여년 만에 모였다.

서울시는 29일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 과정(1966~1968년)에 직접 참여하거나 목격한 관계자 7명을 찾았다"며 "이들로부터 입수한 당시 제작 기록물을 바탕으로 동상을 원형대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지난달 이순신 장군 동상의 보수를 위해 내시경 검사를 벌이다 동상이 구조적으로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하고 보수를 위해 당시 제작자들을 찾아 나섰다.

시에 따르면 동상 주조는 성수동에 있던 대광공업사에서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구리 공급이 여의치 않아 국방부에서 지원한 탄피를 동상 제작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물이 제대로 주입되지 않아 결국 탄피를 쓰지 못했고, 해체된 선박에서 나온 엔진과 놋그릇, 놋숟가락 같은 일반 고철이 구해지는 대로 투입됐다. 그러다 보니 동상 재질과 표면이 고르지 못했고, 색상도 균일하지 않아 짙은 청록색 페인트와 동분을 섞어 표면을 칠해야 했다.

여섯 조각으로 주조된 동상 몸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동상 재료와 같은 성분의 용접봉을 만들지 못해 부산 미군부대에서 구해온 구리 용접봉이 쓰였다. 대광공업사에서 주조 기술자로 일했던 김주남(65)씨와 류용규(63)씨는 "당시 동상 외부는 전체를 용접했지만 내부는 일부밖에 하지 못해 내부에서 많은 균열이 발생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동상 높이가 당초 계획보다 1.5m 늘어난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흙으로 본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5m 크기로 계획됐으나, 세종로 폭이 100m로 확장되면서 주변과 조화를 위해 지금 크기인 6.5m로 확대ㆍ변경됐다.

당시 동상을 자택 마당의 가설 작업장에서 제작하던 김세중(1986년 작고) 작가는 이로 인해 장군 얼굴과 투구 등 상부 조각이 작업장의 천정을 뚫고 나가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김 작가의 제자로 작업에 참여했던 백현옥(70)씨는 "선생은 허술한 작업장에서도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4, 5시간 쉬지 않고 점토와 석고 작업에 열중하는 등 훌륭한 이순신 장군상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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