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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기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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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기뢰

입력
2010.03.2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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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 때인 1777년 미국의 발명가 데이비드 부쉬넬은 화약을 가득 넣고 밀봉한 나무통을 바다에 띄운 뒤 조류에 의해 영국 군함에 부딪히게 했다. 인류 역사에 기뢰의 첫 등장이다. 그러나 기폭방법이 신통치 않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기뢰의 처음은 이렇게 미약했다. 그 후 개발을 거듭, 단 한 발로 수천만 내지 수억 달러짜리 대형 함정을 침몰시키거나 막대한 피해를 가하는 병기로 진화했다. 기뢰 한 발이 보통 수 천 달러 정도이니 비용에 비해 효과가 매우 우수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기술이 단순하고 이전도 쉬워 가난한 나라들이 바다의 전략무기로 활용하기에 그만이다.

■ 기뢰의 유용성은 주요 전쟁사에서 잘 확인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국과 동맹국 양측에서 약 30만 개의 기뢰가 살포돼 966척의 선박이 침몰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모두 70만기의 기뢰가 사용됐고, 연합국-추축국 양측에서 3,200여척의 선박과 잠수함이 침몰했다고 한다(유용원의 군사세계, 잊혀진 기뢰전 위협). 당시 독일은 폭격기를 이용해서도 투하했는데, 독일의 기뢰투하 폭격기 1대가 격추될 때 20척의 연합국 선박이 기뢰에 격침되는 비율이었다고 한다.

■ 6ㆍ25전쟁 때 북한도 해안 방어를 위해 기뢰에 크게 의존했다. 전함 한 척을 변변히 띄우지 못할 정도로 제해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조석간만 차가 큰 인천의 상륙작전 때는 간조 때 드러나는 기뢰를 파괴할 수 있어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산만에서는 소련군의 지원 하에 부설된 3,000여 개의 기뢰 때문에 유엔군의 상륙작전이 지연돼 유엔군의 북진에 큰 차질을 빚었다. 그 틈을 타 북한 수뇌부가 중국 국경 부근으로 피신할 시간을 벌게 되었다니 기뢰는 6ㆍ25 전쟁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 천안함의 침몰 원인으로 기뢰 폭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함정 내부 폭발이나 어뢰 등 폭탄에 의한 직접 피격으로는 선체가 두 동강 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뢰가 근접한 수중에서 폭발할 경우 발생하는 강력한 충격파에 의해서만 배가 두 동강 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곳에 기뢰가 있게 됐는지가 설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침몰 원인으로 기뢰를 지목하는 것은 성급하다.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인 만큼 결정적인 근거가 나오기까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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