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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표' 드라마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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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표' 드라마가 달라졌다

입력
2010.03.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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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가 SBS '인생은 아름다워'(이하 '인생은')로 돌아왔다. 김씨는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이후 2년의 공백기를 가졌지만 '김수현 표' 드라마의 골갱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부터 증손녀까지 4대가 모여 사는 생활이나 재재거리며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 인물들까지 방송 중간부터 보더라도 누구나 그의 작품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드라마, 뭔가 다르다. '목욕탕집 남자들'(1995)에서 경제권을 쥐고 가족들을 휘어잡던 아버지도, '엄마가 뿔났다'에서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신세 한탄을 하던 어머니도 없다. 4회까지 방송된 것을 토대로 전작들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봤다.

동성애

'인생은'이 기존 김수현 드라마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건 동성애다. 가장인 양병태(김영철)의 아들 태섭(송창의)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훤칠한 용모의 내과의사로 이른바 '엄친아'다. 그런데 이 친구, 여성에게 도통 관심이 없다. 동료 의사인 채영(유민)이 강제로 키스를 해도 무덤덤하다. 이유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서다.

재벌가와의 사랑은 있을지언정 가족드라마에서만큼은 대체로 무난한 애정 구도를 택했던 김씨. 그가 동성애를 소재로 택한 까닭은 성적 소수자의 모습을 조명해 스스로 '트렌디 드라마의 기수'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야 어떻든 한 남성을 사이에 둔 남성과 여성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 관심을 모으는 부분임에는 틀림 없다.

권위의 약화

'인생은'에서는 '엄마가 뿔났다'의 나충복(이순재), '부모님 전상서'의 안재효(송재호), '내사랑 누굴까'의 아버지(이순재) 등 극 전체의 방향을 이끌고 가는 '권위의 상징' 할아버지가 없다.

이 역할은 할머니(김용림)가 맡았는데, 헛소리 하는 아들의 따귀를 거리낌 없이 올려 붙이고 때때로 호통도 치지만 대가 얇다. 이끌고 가기보다는 무난하게 끌려간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할아버지(최정훈)도 있기는 하나 평생 바람을 피우다가 말년에 본처의 집에 숨어들어온, 그의 말대로 '식은 밥'에 불과하다.

아버지 병태의 권위도 찾아볼 수 없다. 또박또박 따지고 드는 동생에게 허허 웃으며 "알았어"를 연발할 정도로 누구에게나 관대한 사람이다. 재혼한 지 30년 간 아내 김민재(김해숙)의 불호령이 무서워 양변기에 소변을 볼 때도 '튀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공처가다.

열린 공간

김씨의 드라마는 보통 울타리로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게 보통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물이 있다손 치더라도 주인공의 형제나 부모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다르다. 이야기가 주로 전개되는 불란지 펜션은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를 상징하듯 할머니가 기거하는 제주의 전통 가옥과 아들 가족이 기거하는 펜션 건물들을 영어 알파벳 씨(C)자로 배열해 한 쪽이 열려 있다.

이는 펜션 손님들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극중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자기가 먹은 그릇 자기가 씻으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라며 불평하는 병태의 딸 초롱(남규리), 가방을 들고 배웅까지 나가는 아들 호섭(이상윤) 등이 그렇다.

몇 가지 차이점에도 역시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야무진 성격만큼 말투도 똑 부러진 병태의 둘째 동생 병준과 실수 연발에 입까지 가벼운 막내 병걸(윤다훈)은 '엄마가 뿔났다'의 나삼석(김상중)과 나영일(김정현)처럼 잘나거나 못난 형제의 전형이다. 아이 생선 가시를 발라주라는 할머니의 말에 "금방 안 삼키고 우물우물하다가 가시 없으면 삼키니까 괜찮아요"라는 일곱 살 손녀의 대답처럼 등장인물들의 옹골찬 대사들도 '인생은'이 김수현씨의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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