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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킨제이와 20세기 성연구' "금기를 깨라" 性억압에 반기 든 킨제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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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킨제이와 20세기 성연구' "금기를 깨라" 性억압에 반기 든 킨제이의 삶

입력
2010.03.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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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개손 하디 지음ㆍ김승욱 옮김/작가정신 발행ㆍ595쪽ㆍ2만5,000원

인간의 성 행동을 다룬 '킨제이 보고서'는 여전히 그 이름만으로도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의 실제 성생활 실태를 기록한 '인간 남성의 성행동 연구'(1948년)와 '인간 여성의 성행동 연구'(1953년) 등을 가리키는 '킨제이 보고서'의 주인공 앨프리드 킨제이(1894∼1956).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베일에 가려졌던 인간의 성생활을 밝혀냈을까.

작가 조너선 개손 하디가 쓴 <킨제이와 20세기 성연구> 는 킨제이의 가족과 동료, 연구소 직원, 킨제이가 남긴 서신, 인터뷰, 테이프,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그의 생애와 연구과정을 파고든 평전이자 개인사 연구서다.

성 행동 연구에 앞서 킨제이는 이미 20여년 간의 혹벌 연구로 성공을 거둔 뛰어난 곤충학자였다. 그는 생물을 대단히 생생하고 구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구방법을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에서 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 '화류계 쪽에 가까운 수상쩍은 일''로 취급되던 성 연구를 킨제이가 자신의 핵심적 연구 주제로 삼게 만든 것은 성장배경이었다. 그의 성장기에 미국의 많은 주(州)에서 부부관계를 제외한 모든 성관계는 사회적 비난의 대상일 뿐 아니라 불법이었다. 성에 관한 지식도 없어 키스만 해도 임신이 된다고 믿고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모르는 여대생들이 수두룩했다. 킨제이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미끼로 담배가게에 보내 담배를 파는 주인을 당국에 신고하곤 했던 엄격한 감리교 신자였다.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성욕에 죄책감을 느낀 킨제이는 스물일곱 살 때 결혼을 해서야 성적인 욕구를 발산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그처럼 엄격한 도덕교육에 대한 반발이 킨제이의 성 연구를 추진시킨 근본적인 힘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결혼 후 성적인 금기에서 서서히 벗어난 킨제이는 자동차 안이나 캠퍼스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이 늘어나던 1920~30년대에 이러한 현상의 의미를 알아챘다. 금욕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성교를 겁내, 대신 애무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처럼 성을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젊은이들에게 공감했다. 과학자로서 오랫동안 '동물로서의 인간'을 깊이 생각해오던 그는 그때까지 아무도 탐구해보지 않았던 성이라는 주제를 급속히 과학의 영역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킨제이는 인간을 몸집이 크고 약간 더 복잡하다는 점만 빼면 혹벌과 똑같은 날개 없는 생물로 생각했다. 넓은 지역에서 엄청난 숫자의 혹벌 표본을 수집해 세심하게 측정한 연구방식대로,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를 통해 1만건에 이르는 성경험 사례를 수집해 연구했다.

'변이'는 그의 주장의 요체였다. 인간은 동물이고 그 성행동은 포유류라는 뿌리에서 유래했으며, 동성애 등 이른바 도착적 행위라는 것도 영장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동성애를 즐기기도 했던 그는 '비정상'이라는 개념을 배격하면서, 세상에는 '비정상' 대신 '희귀한 것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사회구조와 도덕은 모든 인간을 똑같이 취급하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평생 연구활동에 매진한 일벌레였던 그의 모습을 물론, 성적 소수자들에게 다정다감했던 면모, 개인적 성생활까지 인간 킨제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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