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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급 위주의 지방정치

입력
2010.03.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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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연설회가 없어진 후 듣기 어려운 말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부름을 받고"다. 선거에 나와 표를 청하는 후보들이 겸연쩍음을 가리려는 치레말로 주로 썼지만, 실제로 지방에서는 머뭇거리는 '동네 인물'의 등을 떠밀어 선거에 내보낸 예가 없지 않았다. 선거를 시장에 비유하면, 일부 지역에나마 수요자 우위의 정치시장이 존재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철저한 공급자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잠자는 수요를 일깨우기 위해 '국민 참여'나 '여론조사' 등이 도입됐지만 성과에는 아직 물음표가 붙어 있다. 정당이 소비자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시장조사에 게을렀거나 만성적 대결 구도 속에서 내부 단합에 우선 순위를 두었던 탓이 크다. 정책과 자질을 보고 '인물'을 뽑아봐야 결국은 정당의 집단의지에 묻혀 보이지 않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유권자들은 능동적 요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묻지마 투표'는 더 위험해

공급자들이 임의로 정해 진열대에 올린 상품이라도 꼼꼼히 비교할 수 있다면 현명한 소비자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품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규격조건을 견주기보다 우선 상표에 사로잡힌다. 국정 방향과 직결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라면 큰 걱정이 아니다. 불행히도 국정 선거보다는 지방선거에서, 그것도 선거구 단위가 작아지면서, 단체장에서 지방의회 의원으로 가면서 고질병이 심하다. 국정의 전체적 방향보다는 주민 복리에 치중해야 하는 당위와는 정반대다. 중앙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지방정치 에서 더욱 확대돼 나타난다. 2006년 5ㆍ31 지방선거 당시 자신이 표를 던진 지방의회 의원의 이름을 기억하는 투표자는 20% 남짓했다.

만연한 정치 무관심이 민주주의의 위험 신호로 여겨지고 있지만 주관적 인식을 결여한 투표행위도 그 못지않게 위험하다. 지방선거에서는 두 가지가 겹쳐서 나타나고 있으니 이만저만한 위협요소가 아니다. 두 달 뒤로 다가온 6ㆍ2 지방선거가 그래서 걱정이다.

예비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경쟁률이 각각 4.6대 1, 4대 1에 이르러 공급 측면에서의 열기는 뜨겁지만, 수요 측면에서는 '이름 알리기' 형태로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는데도 냉기만 감돈다. 중앙선관위가 '투표로 말하세요'라는 구호를 내걸고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성과는 낙관하기 어렵다. 상당한 성과를 올리더라도 투표율 제고만으로는 더욱 본질적인 '묻지마 투표' 문제는 남는다. 만성적 수요 부족 구도를 흔들지 못하는 한 지속될 상황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듯, 좀처럼 흔들기 어려운 틀이라면 내던져 깨뜨리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제2공화국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회복할 당시의 환호는 재도입 20년이 다 돼 가는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 반면 국가재원의 낭비를 비롯한 비효율을 지적하는 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 뒤에 숨었을지 모를 음모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논의해볼 만하다.

지방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중앙정치와 달리 정당의 장악력이 커진 결과만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중앙집권 역사에 눌려 촌락 단위를 넘어서는 지역자치의 전통을 결여한 데다 산업화 이후 인구의 도시집중과 수도권 비대화, 잦은 이사 등으로 대다수 국민이 지역밀착형 정서에서 떨어져 나온 때문이다.

희박한 주민 정체성 직시해야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주민들은 현재 살고 있는 자치단체의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다른 자치단체 지역인 밖에서 일하고 잠만 자고 가는 지역에 특별한 애착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애초에 지역밀착형 요구를 갖기 어렵고, 겨우 집값이나 땅값 상승 효과를 가진 개발 공약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다.

역사 전통과 지역붕괴 수준이 전혀 다른 선진국을 잣대로 한 이상에 매달려 마냥 눈앞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차라리 6ㆍ2 지방선거를 정치권이 지자제의 발본적 개혁, 지역현실마다의 '맞춤형 제도'논의에 나서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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