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제2기 연구보고서가 최근 공표됐다. 공동연구위의 출범은 극우 후소샤(夫桑社) 교과서가 2001년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것이 계기다. 한국이 이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경색되자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小泉) 총리가 연구위 발족에 합의했다. 양국 학자들의 토론을 통해 역사 인식에서 서로 이해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차이를 좁혀 보자는 취지였다.
공동부교재 제작을 목표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10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연구를 통해 한일역사공동연구위는 양국의 역사인식이 너무 다르다는 점만 거듭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화한 근ㆍ현대사에서 인식 차이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이번 2기 보고서에서 한일 강제병합과 관련해 한국은 병합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됐다며 불법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학계의 주장은 국제법학자의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며 부정한다. 일본 교과서의 군위안부 문제 기술이 갈수록 줄어드는 점을 한국 연구자들이 우려하자, 일본은 한국이 군위안부와 여자정신대를 혼동하고 있다며 개념부터 분명히 하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역사공동연구위가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대립을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우선은 위원회가 지향하는 연구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역사 인식에서 상호 이해를 높인다는 연구위의 출범 취지는 높이 살만한 것이지만 어떤 식으로 상호 이해를 높일지 명료한 각론이 없다. 결국 양국 학자들은 자국의 기존 역사인식을 재천명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며 그래선 회의가 공전을 거듭 할뿐이다.
차기 역사공동연구위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의 하나로 공통역사교과서 제작을 들 수 있다. 한일 공통교과서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본 정부도 원론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양국의 인식 차이가 큰 데 당장 가능하겠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는 최근 수년 사이 한일 또는 한중일 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만든 공통교과서가 이미 여러 종 출간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반성과 화해에 기초해 미래를 함께 개척할 수 있는 공통교과서를 제작한다"는 목표 아래 4년 토론 끝에 결실을 본 한중일 공통 동아시아 근현대사 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제작 사례는 크게 참고할만하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한일 정부의 정치적인 리더십이다. 이를테면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한일 정부가 학교별 자율 채택을 전제로 한 부교재 형식의 공통교과서 제작에 합의해 이를 차기 연구위의 목표로 제시한다면 적어도 '화해'를 위한 회의가 '대결'로 비치는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목표 아래서는 일본도, 한국도 취지에 공감하는 학자들로 연구위원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결적인 평가자세 지양을
한일공동역사연구를 뒷받침하는 토양이 될 여론, 특히 언론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수십 년 전부터 일본 주류학계에서 부정돼 왔고 대부분의 일본 교과서에서 기술하지 않는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을 일본측이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재확인했다고 그것을 이번 2기 공동연구의 최대 성과처럼 평가하는 한국 언론식의 대결적인 태도로는 미래지향적인 역사 화해는 불가능하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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