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삶과는 달리 고인의 마지막 길은 차분하고 경건했다.
고 권희로씨의 장례식이 열린 28일 오전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 참석자는 일본에서 달려 온 권씨 여동생 기요모토 나츠코(76), 조카 사위 야마자키 나오시(64)씨 등 유가족과 지인 20여명이 전부였다. 권씨 석방 운동을 주도했던 부산 자비사 삼중스님은 발인식에서 “저승에 가시거든 이승에서처럼 끝없이 ‘전쟁’하던 삶을 살지 마시고 부디 편안하고 찬란하게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족과 지인들은 소리 없이 흐느꼈다.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한 권씨의 유골은 일단 연제구 거제동 자비사에 안치됐다. 유족과 삼중스님 등은 자비사에서 49제를 지낸 뒤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시즈오카현 카게가와의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한 유언을 지키기 위해 일본 정부 측과 협의키로 했다.
한편 1970년대 권씨의 석방을 도왔던 이재현(63)씨는 이날 권씨가 1999년 9월 일본 교도소에 머물 당시 자필로 쓴 편지를 공개했다. A4용지 3장 분량에 검정색 볼펜으로 쓴 이 편지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동포애 영주 귀국에 대한 설렘 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제가 우리 말을 배우고 싶어서 일본 형무소 안에서 혼자 열심히 공부를 해 왔지만 정말 어려움도 많고 고생도 했습니다. 사전을 쓰면서 이만큼이라도 편지를 쓸 수 있어도 말할 때는 발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또 "저는 틀림없이 한국 사람인데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그날부터 잠도 못하는(못 잘) 정도(로) 바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동포애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편지에서 "출소하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 건강진단을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병원에서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는(읽을) 그런 입장이 아닙니다. 병원 입원하는 이야기는 사퇴할(사양할) 생각입니다"며 "그런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살림 때문에 병에 걸려 집에서 누워 계시는 동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불쌍히 여깁니다. 나보다 그런 사람들을, 동포들을 한 사람이라도 많이 도와주어야 됩니다"라고 적었다.
모정을 향한 가슴 시린 대목도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작년 십일월 삼일날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것으로 지금도 어머니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버립니다"라고 적었다.
귀국을 앞두고 설렌 마음도 표현했다. 권씨는 "이 편지가 도착할 때는 아마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부터 처음 우리나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태어나신 고향 부산에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유로이 서로 만날 수도 있게 되겠으니까 연락을 해 주세요"라고 썼다.
편지 봉투 뒷면에는 '사랑하는 내 동포 이재현씨!!'라고 적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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