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나 뉴욕에 진출할 생각 없냐길래 제가 잘난 척 좀 했어요. 아직은 한국 시장을 더 탄탄히 다지고 싶다고요, 하하. 글로벌 브랜드 가능성은 인정받은 셈이니 이제 시작이다 싶네요."
국내 최대 패션행사인 서울패션위크가 개막한 26일. 2010 FW 서울컬렉션의 첫 번째 스타는 한상혁(40)씨였다. 제일모직 남성캐주얼브랜드 엠비오(MVI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한씨는 '등반'을 주제로 정통 영국식 테일러링과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믹스한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여 국내외 패션관계자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이날 낮 12시 서울무역센터전시장(SETEC)에서 가진 쇼에서 그는 글렌체크와 아가일 패턴, 허리선을 날렵하게 잡는 브리티시 패턴의 정장 등 클래식 아이템을 고급스러운 울 망토와 변형된 아노락(모자가 달린 가볍고 짧은 재킷) 점퍼, 상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올오버, 등산 로프 자일에서 힌트를 얻은 액세서리 등 아웃도어 단품들과 매치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감청색, 자주색, 겨자색 등 감각적인 색상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것도 돋보였다.
프랑스 파리의 유명 패션매장 레클뢰르의 바이어 아르망 하디다씨는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독창성과 우아함을 겸비한 무대"라고 상찬했다. 패션쇼가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는 레클레뢰르를 비롯, 파리의 패션에이전시 토템, 일본의 유명 편집매장 빔스 등에서 온 바이어와 취재진이 한씨를 만나려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음 쇼 준비가 지체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씨는 "이번 패션쇼 준비를 통해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성숙했다"고 말했다. 중견 패션기업에서 일하다 제일모직에 스카우트된 것이 2008년 가을, 뭔가 독특한 옷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지만 우연히 접한 세계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글이 마음을 잡아줬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등정 성공 후 '한발 한발 그냥 걸었다'고 밝힌 글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어요. 디자이너로서 한계에 봉착한 느낌을 받거나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그걸 극복하게 해주는 건 다만 한발 한발 중단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 나 자신을 데리고 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거죠. 그 뒤부터는 편하게 디자인이 나와요. 창의적인 동시에 입기에 좋은 옷을 조율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패션쇼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엠비오는 올 하반기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상하이의 유명 백화점들과 현재 입점 협의 중이다. 엠비오는 이번 봄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남성복매장에 최대 규모로 입점했을 만큼 시장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한씨는 "중국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유럽까지 엠비오의 이름을 떨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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