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6일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 협약이 타결됐음을 선언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의 평화와 안보에 한걸음 다가갔다"고 말했다. 전세계 핵무기의 95%를 소유하고 있는 미ㆍ러 양국은 보유 중인 핵탄두의 30%, 미사일의 50%를 7년 안에 폐기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는 가장 어두웠던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고, 또한 현 시대에도 중대한 위협"이라며 "오늘, 우리는 자손들의 안전한 미래를 건설함과 동시에 20세기의 유산을 뒤로 하는 중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대변인 나탈리아 티마코바는 인테르팍스 통신에 "이번 협정은 양국의 이해를 균형에 맞게 반영했다"고 밝혔다. 크렘린 러시아 대통령 궁도 공식 성명을 내고 "전략적 무기는 각국의 영토 내에서만 허용될 것이라는 점을 명문화했다"고 밝혔다.
최종 타결안은 앞서 알려진 내용(한국일보 26일자 16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양국이 전략적 핵탄두를 현재 허용된 2,200개에서 1,550개로 줄이고, 미사일은 1,600개에서 800개로 줄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타결안과 별도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프로그램을 두고 양국 정상이 극도의 신경전을 벌렸던 비화도 공개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은 타결을 최종 매듭짓기 위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러시아의 새로운 요구사항을 들어야 했다. MD 프로그램 제한을 요구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드미트리, 우리는 합의했지 않느냐"고 분노의 목소리로 따졌다. 오바마는 이어 "이럴 순 없다. 이 협상이 깨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전화를 끊고 극도의 절망감을 토로했으며, 함께 있던 참모는 "대통령이 그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합의안에 MD와 관련한 러시아의 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양국 정상은 다음달 7일 체포 프라하에서 협정에 서명한 뒤, 의회로 넘기게 된다. 미 상원의 3분의 2(67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공화당 의원의 찬성이 최소 8표가 필요하다. 리처드 루가 등 일부 온건파 공화당 의원이 찬성하고는 있지만, 러시아에게 지나치게 많이 양보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러시아는 두마(하원)와 연방평의회(상원)에서 모두 통과돼야 한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협정에 대해 "중대한 이정표(milestone)"이라고 환영했고, 유럽연합(EU)도 "세계 공동체의 안전을 향상시켰다"고 환영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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