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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슬픔의 특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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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슬픔의 특효약

입력
2010.03.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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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셨던, 내 할머니 경주 이씨는 두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을 낳았다. 이건 내게 고모가 다섯 분 있다는 이야기다. 첫째 고모와 막내 고모는 나이 차이가 있어 자매가 아니라 모녀 사이로 보인다. 실제로 고종 사촌 형이 막내 고모 보다 나이가 많다. 이건 또 큰 고모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장모의 막내딸 출산을 축하하러 왔다는 이야기다.

아주 큰 가물치 한 마리까지 잡아서.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내게 아버지 없는 자리를 다섯 분의 고모부가 대신해주었다. 세월은 무정한 법, 첫째 둘째 고모부 세상 떠나시고 최근 셋째 고모부도 떠나셨다.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니 셋째 고모의 첫마디가 "야야 장조카야 이제 혼자서 우째 사노"였다.

슬하에 세 명의 자식이 모두 가까이 살고 있는데 고모는 슬픔보다 큰 불안감을 보였다. 장례가 끝나고 고모의 불안은 생각보다 심해졌다. 큰 고모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와 셋째 고모, 즉 시누이와 올케의 긴 전화통화가 있었다. 어머니의 첫 말씀은 "고모야 나는 어떻게 살았것노?"라는 반문이었다.

어머니의 처방전은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펑펑 울어라"였다. "바다든 산이든 찾아가 실컷(실컷) 울어라" 였다. 슬픔을 치료하는 데 눈물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것, 서른 중반에 홀로 되어 40년째 혼자 사는 어머니는 벌써 알고 있는 특효약이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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