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세 다카시 지음ㆍ이규원 옮김/프로메테우스 발행ㆍ560쪽ㆍ2만5,000원
이 책을 읽으면 충격과 혼란에 빠질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이 책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한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는 얼마나 끔찍한가.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이자 논픽션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67)가 쓴 <제1권력> 은 그런 생각들로 독자들을 두고두고 괴롭힐 책이다. 세계 최고 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진짜 권력은 모건과 록펠러 두 독점재벌이고, 이들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쥐락펴락하며 역사를 농단해왔다고 맹공을 퍼붓는 책이다. 제1권력>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천만에! 미국 대통령을 만들고 맘에 안 들면 끌어내리는 건 두 가문이다. 미 행정부의 많고 많은 똑똑한 각료들? 그들 또한 상당수가 두 가문의 하수인이고 끄나풀이다.
20세기의 주요 사건마다 그 배후에는 모건과 록펠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한국전쟁, 케네디 암살, 베트남전쟁, 석유 파동, 유럽의 핵 배치, 세계 각지의 분쟁, 심지어 노벨상과 아카데미상과 올림픽까지, 목록을 대자면 아주 길다. 두 독점재벌의 숨겨진 이권 다툼과 이합집산의 투기 비즈니스가 이 모든 재앙과 비극의 원흉이다.
그들의 '황금 손가락'은 안 미치는 데가 없이 뻗쳐 있다. 모건은 금융업으로, 록펠러는 석유사업으로 출발해 미국 산업 전반을 장악했다. 현재 이 두 거인이 조종하는 영역은 수송ㆍ자원ㆍ과학ㆍ기술ㆍ식량ㆍ정치ㆍ군사ㆍ사법ㆍ언론ㆍ오락산업을 망라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한 속임수를 써가면서 그들이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그래서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자본의 탐욕과 횡포를 비판하는 책은 늘 있었지만, 이 책의 폭발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모건과 록펠러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이 두 가문 탓이라고 하는 건 반자본주의자의 지독한 편견 아닐까, 흔해빠진 그러나 입증하기 힘든 음모론으로 호객을 하는 책은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단정하기엔, 지은이가 제시하는 자료와 근거가 지나치게 치밀하다. 그는 자본의 신성가족을 이루고 있는 이 두 가문의 인맥을 빠짐없이 추적하고, 그들이 주요 사건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샅샅이 해부해서, 그들의 힘이 얼마나 깊숙이 광범위하게 뻗쳐 있는지 보여준다.
책은 모건과 록펠러가 미국 경제를 휘어잡기 시작한 19세기 말 미국 대통령 매킨리(1987~1901 재임)부터 1980년대 10년을 이끈 레이건 대통령까지, 100년에 걸친 역대 미국 정부의 대통령과 각료들의 명단을 맨 뒤에 32쪽에 걸쳐 정리해놨다. 공식 직함이 어찌됐든간에 그들이 실은 모건과 록펠러의 사람이거나, 이 두 가문의 거미줄에 걸린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이 계보도를 보고 있으면 지은이의 말마따나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책은 1986년 일본의 명문 출판사 고단샤에서 처음 나왔다. 8개월 만에 30만부 이상 팔릴 만큼 화제가 됐는데도, 고단샤는 내부 결정으로 출간을 중단했다. 이유는 안 알려져 있다. 그 바람에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여년 전 예닐곱 명의 해직기자들이 '신지평'이란 필명으로, 이 책의 3분의 2 정도를 공동 번역해 원서와 같은 제목의 <억만장자는 할리우드를 죽인다> 라는 제목으로 낸 적이 있다. 억만장자는>
나온 지 20년이 지난 책을 두고 파괴력 운운하는 건 불쾌감을 자아내는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다. 모건과 록펠러의 황금손가락이 아직도 멀쩡하단 말인가, 록펠러 가문이 지금은 힘이 많이 빠졌다던데, 최근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 모건도 예전같지 않을 것이다, 등등 이의를 제기할 근거 혹은 소문은 적지 않다. 무엇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질 독자를 위해 비교적 최근 소식 두 가지를 알리겠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 미국 상원의 통상ㆍ과학ㆍ교통위원회 위원장은 록펠러의 직계 6대손 제이 록펠러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로 지각변동을 겪은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리더는 JP모건 체이스의 CEO 겸 회장 제이미 다이먼이다. 공교롭게도.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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