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을 둥그런 지평선엔 누런 해가 매달려 있고,
집들과 밀밭 사이의 좁고 휘어진 길 검은 개는 노인을 끌고 사라졌다.
노인은 닳아빠진 금이빨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사소한 교전은 정오에 있었다.
누군가 소각장의 첨탑에 올라갔다.
수백만 볼트의 전기가 그의 발바닥을 통과할 때
TV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의 머리통 고독한 공처럼 함께 튀어올랐지만,
이빨 사이에 박혀 있던 까만 수박씨가 탄피처럼 뱉어져 나오고는
모든 게 다시 제자리에 얹혀졌지만,
화면은 지지직지지직 교전 중이었다.
초록의 풀밭에는 열두 개의 다리가 거적을 뒤집어쓰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어린 군인들은 묵묵히 지나갔고
농부들이 찌그러진 달을 굴리며 지나갔다.
아이들은 밀보다 빨리 자랄 것이다.
이발소에서는 머리카락 뭉치들 누런 부대에 담겨 팔려간다.
사내의 두 발은 피뢰침에 매달려 있다.
가끔씩 목을 죄고 있던 넥타이가 바람에 펄럭거렸으나
슬픔은 아직 널어 말릴 만하고
마을 사람들은 오렌지색 등을 켜 놓은 채
잠이 든다. 누군가 실수로 리모컨을 누르자
발 밑에 뻥 뚫린 구멍으로 불빛들이
모조리 휘돌아 빠져나간다.
지금 마을은 검은 어항처럼 고요하다.
● 왕소군이 흉노 땅에서 처음 본 봄의 풍경이 꼭 이랬을까요? 삼월에도 흩날리는 눈송이들과 차가운 바람. 얼어붙은 달과 움츠러든 나무들. "오랑캐 땅이라고 꽃과 풀이 없으랴마는"이라며, 흉노 땅에 시집 간 왕소군은 흉노에서 맞이한 첫 봄을 노래하면서 그렇게 운을 뗐다지요. 여긴 흉노의 땅도 아니고 나는 억지로 오랑캐 땅에 시집 간 왕소군도 아닌데, 올 봄에는 어쩐지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는 말이 입에서 맴도네요. 여기가 우리가 사는 마을이라면, 이렇게 검은 어항처럼 고요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거죠. 오랑캐 땅이 아니라면, 여기가 우리가 사는 마을이라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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