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스 세라 지음ㆍ고인경 옮김/푸른숲 발행ㆍ256쪽ㆍ1만2,000원
세상에 태어나 7년을 살았으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나 서글프다. 심각한 뇌 질환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모와 그 어떤 의사표현을 할 수 조차 없고 몸은 미동조차 힘들다.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제한돼 있다. 태어나서 자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을 인지하고 삶을 배우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이 책 속의 아이 유니스에겐 실현 불가능한, 이 세상 밖의 그 무엇이다.
유니스는 저자의 아들이다. 그저 멍한 진공 상태에서 7년을 보낸 후 마지막 길을 떠났다. 아버지는 일찍 떠날 아이를 위해 가족들과 부지런히도 세상을 누볐다. 짧은 시간을 함께하며 가족들은 유니스가 정상이라면 마주치지 못했을 삶의 역설적 상황과 마주한다.
유니스 덕분에 사람들로 붐비는 대형 놀이공원에서 귀빈 대접을 받고, 이탈리아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푸대접을 받고는 분노를 터트리기도 한다. 로마의 산피에트로 대성당에서 "(아들이 의사표시를 위한) 신호 딱 하나만 보내주면 영원히 하느님을 믿을게"라고 속으로 애타게 외치는 저자에게 아들은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지독한 냄새의 황금색 배설물은 저자에게 아이러니한 삶의 미소를 전한다.
스페인 카탈루냐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라몬 룰 상을 수상한 작가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다. 슬픔을 꾹꾹 누르고 아들과의 사연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눈물로 얼룩진 간호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필치가 가슴을 헤집는 책이다. 저자의 소원은 유니스가 여느 아이처럼 힘차게 내달리는 것이었다. 책 뒷부분은 유니스의 사진들을 36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유니스는 지상을 제법 힘차게 내달리는 듯한 착시를 연출한다. 가슴에 묻은 아이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