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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시집 '살구꽃 그림자' 펴낸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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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시집 '살구꽃 그림자' 펴낸 정우영

입력
2010.03.2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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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50ㆍ사진)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 (실천문학사 발행)를 펴냈다.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 이후 5년 만이다. 1989년 '민중시' 동인으로 시 쓰기를 시작,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리얼리즘을 천착했던 그의 시는 이제 순연했던 과거를 지향하면서 오늘의 절망적 현실을 치유하려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시집 맨 앞에 배치한 표제작에서 시인은 '나는 마흔아홉 해 전 우리 집/ 우물곁에서 베어진 살구나무'라고 선언한다. '서러운 날 꿈자리에서는 늘 우물곁으로 돌아가/ 심지 굳은 살구나무로 서 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전설과도 같은 기쁨과 슬픔들이/ 노란 전구처럼 오글조글 새겨진다.'

고향집 살구나무로 상징되는 그의 과거 지향의 의도는 그러나 현실 도피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접합을 통한 현실의 치유라는 점은 여러 시편에서 확인된다. 상처(喪妻)한 뒤 치매를 겪다가 급기야 아이들을 친구 삼으려 드는 할아버지를 묘사한 시 '퐁당퐁당, 탱탱한 미래'에서 시인은 노인의 정신적 퇴행을 '쪼글쪼글했던 미래가 새로운 숨결로 아주 탱탱해지는 것'이라 밝게 재해석한다. 시 '고향의 그림자'에서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들었을 때 고향이 '우리 집 뒤안 바람을 데려와 내게 쏘인'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상상력을 펴보인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간파하는 시인의 눈이 흐려졌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하철에서 풀썩 쓰러지는 한 여학생을 부축한 봄날 출근길, 시인은 '길거리 곳곳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봄꽃들'을 '여기저기 픽픽 쓰러지는 열다섯 내 딸들'이라 여기며 마음 아파한다('지철화'에서). 시 '마른 삭정이가 걸어오는 것처럼'에 담긴, 노숙인의 남루한 일상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소외자에게 기울이는 그의 깊은 관심을 엿보게 한다. '그는 몸 한껏 움츠려 녹슨 공중전화기/ 배꼽 뒤적거려 잔돈 챙기거나/ 돌 틈에 끼어 시드는 낙전 집어삼킨다./ 쓰린 속에 곡기 들어가자 창자가 뒤틀리는지/ 찬 바닥에 모로 누워 식은땀 게워낸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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