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지음/자음과 모음 발행·292쪽·1만2,000원
이야기 솜씨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설가 김종광(39)씨가 이번엔 군대를 소재로 예의 걸쭉한 입담을 펼쳤다. 그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군대 이야기> 는 1990년대 중반 군 복무를 했던 1974년생 말단 공무원 소판범의 이야기다. 김씨는 이 소설을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각각 주인공이었던 전작 <야살쟁이록> 과 <첫경험> 을 잇는 '청춘기 연작 장편의 제3부'로 지칭하면서 "차기작으로 구직자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첫경험> 야살쟁이록> 군대>
소판범은 소개팅에서 만난 두 살 연하의 교사 상큼으로부터 군대시절 경험을 들려달라는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군대와 축구 얘기'라는 통념을 깨고 상큼이 이런 요청을 한 데는 나름의 꿍꿍이가 있다. 하지만 판범 입장에선 깔린 멍석을 애써 걷을 까닭이 없다. "그까짓 군대 얘기, 들어주겠다는데 못 할 거 없지 뭐." 한 번 터진 말문이 그칠 때까진 세 번의 만남이 필요했고, 그 새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진다.
녹슬지 않은 유머 감각에 한층 능란해진 김씨의 입담은 300쪽에 달하는 소설이 단숨에 읽힐 만큼 신명이 난다. 특히 군 생활의 자잘한 경험까지 복원, 남성 독자들의 기억을 불러내면서 그들을 작품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김씨의 소설에 빠지지 않는 것이 풍속과 풍자다. 이번 작품 역시 판범이 군대에 있던 1995~97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와 북한 잠수함의 강릉 좌초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상기시키는 한편, 당시의 풍속과 세태를 세밀하게 되살린다. 그것은 작가가 첫 장편 <71년생 다인이>(2002) 이후 줄곧 시도해온 70년대생들의 세대사(世代史) 쓰기 작업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역사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김씨의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치부를 가차없이 고발하는 풍자 정신과 결합,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예컨대 판범은 1996년 북한 잠수함 좌초로 인해 벌어진 남북 간 교전에 동원돼 경험한 부조리와 두려움을 생생히 전하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그 무서움의 총체를 '간첩'이라는 한 단어에 몰아넣고 쏴 죽이겠다는 결의를 해대면 그나마 견딜 만했던 것이 아닐까."(233쪽) 김씨의 비판 의식은 특정한 이념적 진영에 속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표출되는 것이라 소설에 개성을 더한다는 점도 지적해둘 만하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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