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불만이 물리적 폭력양상으로 치닫는가 하면 공화당은 청문회까지 거부해 의사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민주당 루이스 슬로터(뉴욕) 하원의원은 “저격수를 보내 법안에 찬성한 의원의 자녀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전화가 지난주 걸려왔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4일 보도했다. 슬로터 의원의 뉴욕 사무실에는 19일 ‘자유를 지키는 과격주의는 악이 아니다’는 메모를 적은 벽돌이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졌다.
법안이 통과된 21일에도 뉴욕주 민주당위원회 사무실에 벽돌이 날아들었다. 막판 백악관과 낙태 문제에 타협해 법안 찬성으로 돌아선 바트 수투팩 의원은 “당신은 죽은 목숨이다.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으며 잡고야 말 것”이라는 전화메시지를 받았다. 스티브 드리하우스 의원의 경우 ‘개혁을 다시 생각하는 위원회’라는 단체 명의로 난 신문의 개혁 반대 광고에 이 의원과 두 딸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슬로터 의원의 가족은 연방수사국(FBI)의 경호를 받고 있으며, 집으로 배달되는 우편물도 정밀 감식을 받고 있다.
보수성향의 유권자단체인 ‘티파티’도 의원들에 대한 물리적 위협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있다. 버지니아의 조직원인 마이크 트락설은 자신의 블로그에 토머스 페리엘로 의원의 가족 주소를 올려놓고 직접 의원을 성토할 것을 부추겼다. 그 후 이 주소로 협박편지가 배달됐고, 이 주택의 프로판가스 연결호스가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나 FBI가 수사에 나섰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표결 이후 신변위협을 받은 의원이 10여명에 이른다”며 “공화당이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의회 청문회도 무산됐다. 24일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과 로버트 윌러드 태평양군사령관, 케빈 칠튼 전략사령관이 참석하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공화당이 위원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청문회를 보이콧했다. 샤프 사령관은 “청문회 때문에 한국에서 왔는데...”라며 난감해했다.
공화당은 건보개혁에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티파트’ 등 보수세력의 도를 넘는 폭력행태에 대해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자칫 초점이 흐려져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보개혁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폭력은 미국적이지 않으며, 정당한 방법으로 반대를 표명해야 한다”면서도 “미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를 민주당은 설명해야 한다”는 어정쩡한 성명을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반 낙태의원들에게 법안 찬성의 대가로 약속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낙태시술에 정부기금을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날 서명식은 전날 수백명이 초청된 건보법안 서명식과는 달리 낙태에 관한 당 내 복잡한 기류를 의식해 민주당 의원 14명만 초대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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