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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설득을 당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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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설득을 당하는 용기

입력
2010.03.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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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 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등 6가지는 뻔한 내용 같지만, 치알디니는 잘 이론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 사례를 다양하게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은 물론 이 책을 교재 삼아 배우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다.

오바마가 일깨운 설득리더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법안의 의회 통과에 성공하자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이 새삼 부각되고, 우리 정치는 왜 저렇지 못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는 소리가 들린다. 반대하는 의원들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워 설득하고, 외국 방문을 늦추면서까지 수많은 집회에 참석해 국민들의 찬성을 유도한 오바마의 노력은 찬탄할 만하다.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연방정부가 낙태수술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6가지 원칙 중에서'상호성의 법칙'과 가장 관련 있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 행동으로까지 동조하게 되는 동기를 어느 한 가지 법칙으로 한정해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리고 설득을 하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설득을 당해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의 용기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건보법안에 찬성한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 과격 보수세력의 살해 협박과 전화ㆍ이메일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와 진보의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서 태도를 바꾼다면 당장 뒷거래설에 휩싸이고 미국보다 더한 협박에 시달릴 것이다. 진영논리가 훨씬 더 강고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안팎의 불통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안으로는 세종시 문제가 정리되지 못하고 있고, 밖으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가 거세어 다른 국정 운영에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세종시는 야당도 야당이지만 오바마처럼 당 내부의 반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초점이 된 지 오래다. 종교계를 비롯한 외부의 반대가 심한 4대강 사업은 국회 법안통과가 현안이 아닌 데다 이미 일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내부 설득에서 이 대통령은 오바마보다 훨씬 더 불리하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의 핵인 박근혜 전 대표는 자파 의원들과 그 이상 의원들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미래 권력으로서 독자적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친박계 의원들을 1대 1로 만나 오바마 식으로 설득하기가 어렵다. 당만 같을 뿐 진영논리는 여 대 야보다 더 강해 보인다.

상황이 이런 터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듯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여권 인사들의 설화(舌禍)가 잇따라 정부ㆍ여권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실세라는 말을 싫어하는 실세'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지적대로 초조하거나 방심하면 생기는 사고다. 이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대통령도 오바마 못지않게 설득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왜 그런 일을 알려지지 않게 할까. 경우와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통령의 설득행위가 굳이 비공개적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결국 이명박 대 박근혜

이 대통령이 설득과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고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을 나무란 이후, 각계인사들과 정부인사들의 만남이 활발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성심성의를 담아 자신의 몸을 던지는 노력이 없는 설득은 일종의 행사에 불과할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 담임반 학생들을 나무라고 부모가 화를 내며 아이를 꾸짖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질책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결국 대통령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결국 이명박 대 박근혜다. 미국에는 박근혜가 없지만 한국에는 박근혜가 있다. 설득을 당하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도 설득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 대통령에게 오바마처럼 주고받을 게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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