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걸릴 겁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3일 오전 하원이 승인한 건강보험 개혁법안에 서명하면서 무려 22개의 펜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절차를, 미국은 ‘전통’이라며 즐겨 진행한다. 그 뿌리는 어디일까.
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22개 만년필은 역사에 비춰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중요한 법안에 대해 서명하면서 이런 ‘만년필 사랑’을 즐겼는데, 가장 많기로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년 미국 흑인들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공민권법(Civil Rights Act)’에 서명할 때 사용한 72자루였다. 중요한 서명에 여러 자루의 펜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으며,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를 즐겼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지난해 한 법안 서명에 7개의 펜을 사용한 바 있다.
이런 전통은 법안에 기여한 정치적 동지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물론 그 뜻과 달리 펜들은 종종 단지 돈 몇 푼에 팔리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존슨 대통령이 65년 서명에 썼던 펜 중 하나는 최근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499.99달러에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만년필 사랑을 거부했던 대통령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오직 하나의 펜만을 쓰길 원했다. 어느 회사 제품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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