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건 금리 올리는 것밖에 없는데, 금리도 올리지 말고 안정을 꾀하라니 손발이 묶인 처지다." 이성태 총재가 한국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 총재는 24일 저녁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 자산가격 안정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중앙은행에 수단은 하나도 주지 않고 숙제만 많이 주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자산가격에 문제가 있으니 대출해주지 말라고 은행에 요구할 권한이 없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금리도 올리지 말라니 손발을 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국회에서 (금융안정을 목표로 명시한)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최소한 상황판단이라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조사권을 달라고 한 것인데 저쪽(금융당국)에서는 '조사'를 '감독'으로 보고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했다.
42년 한은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일로는 ▦1972년 1만원권 발행이 취소된 것과 ▦97년 한은법 개정 관련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92년 투신사에 대한 특별융자 건을 꼽았다.
이 총재는 "발권과에 근무하던 72년 1만원권 신권의 주 도안이 석굴암 본존불로 정해지자 강권 통치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요구와 기독교계 탄압을 중단하라는 종교계 요구가 결합하면서 대대적 반대운동이 일어나 발행이 취소됐다"고 소개했다.
한은법 개정 때는 "당시 TV에 머리띠를 맨 노조 집행부가 (나와) 같이 비쳐 오해를 샀지만 사실은 주무부서인 기획부장으로서 당연직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것"이라며 "난 원래 '투쟁형'이 아니고,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92년 투신사 특융 지원은 부실에 빠진 한국ㆍ대한ㆍ국민투신 등 3대 투신사에게 한은이 2조9,000억원을 연 3% 이자로 특별 지원토록 한 조치. 89년 증시가 추락하자 정부는 이들 투신사에게 무제한 주식매입 명령(12ㆍ12조치)을 내렸고, 그 후유증으로 투신사들이 경영난에 빠지자 결국 발권력으로 부실을 해결토록 한 것이다.
이 총재는 "굳이 발권력을 동원해 투신 3사를 구제해야 된다면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고, 차선책으로 정부가 국회동의를 받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으며, 조순 당시 총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국회 동의를 받아왔다"면서 "당시 자금부 부부장이었던 내가 소신 때문에 끝까지 결재에 반대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는 부풀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적정 금리수준에 대해서는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므로 상당기간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서민이 대출을 받을 때 조금 부담스러운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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