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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시리어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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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시리어스 맨'

입력
2010.03.2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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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이 남자의 직업은 물리학과 교수다. 곧 있을 심사만 통과하면 종신직을 보장받는다. 가정은 화목하다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스위트 홈'의 구색을 갖췄다. 정원 딸린 교외 주택에서 아내와 두 아이, 장애를 지닌 동생하고 산다.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남부러울 것도 없는 삶이다.

그런데 이 남자의 인생이 급작스레 바닥부터 뒤흔들린다. 하나만으로도 골치를 썩일 악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쓰나미처럼 그의 일상을 덮친다. 아내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며 갑자기 이혼을 통보하고, 누군가의 악의적인 투서로 종신 교수직이 위태롭다. 한 한국 학생은 촌지로 그를 괴롭히고, 이웃은 울타리 경계가 잘못됐다며 소송을 걸어온다. 총체적 위기 속에서 철 없는 아들은 TV 타령이나 하고, 딸은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며 볼멘 소리를 한다.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가 인생에 참 도움이 안 되는 적이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며 장탄식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어느 날 자신을 배반하기 시작한 삶을 이 유대교도 교수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듣는 것만으로도 복장 터질 한 남자 래리(마이클 스터버그)의 사연을 담은 '시리어스 맨'은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의 작품이다. 2008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으로 자신들만의 영화왕국을 세우고 통치하고 있는 형제 감독이다. 그들의 이름은 바른 생활 사나이의 모진 시련을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우스꽝스럽게 직조해내는 이 서글픈 코미디에 접근하는 열쇠다.

영화엔 범죄자도, 피 한 방울도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은 평화스럽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학교와 교외다. 그러나 주인공이 느끼는 삶의 압박은 공포영화 수준이다. 래리를 둘러싼 환경들이 그를 말려 죽이기로 작당이라도 한 듯 스멀스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보여주지 않고 관객을 인물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코엔 형제의 연출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코엔 형제의 전작을 관통했던, 욕망을 좇아 내달릴수록 그 욕망이 오히려 삶의 굴레가 되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영화 속 래리가 만나는 랍비는 아리송한 질문을 던진다. "믿었던 진실이 거짓으로 드러나 내 안의 희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코엔 형제는 해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곤경에 처한 래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위로한다. '삶이 비록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싯구처럼 삶을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언제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삶, 뭐 그리 꼬장꼬장 심각하게 살 필요 있겠느냐며.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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