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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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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

입력
2010.03.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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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인간'을 제대로 탐구한다고 치자. 우선 생물학적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고 존재론적 탐구도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발생 및 진화생물학, 생리학, 유전학, 물리학, 생화학 등 무수한 자연과학 분야가 동원돼야 할 것이고 인문사회과학 쪽 역시 철학, 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예술 등을 두루 공부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분절된 지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논하는 것은 부분을 전체로 확장하는 도그마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2000년 전후해 본격 제기된 개념이 통섭이다. 실제로 인문사회ㆍ자연과학 간, 또는 인접 학문과의 통섭 없이 창조적 발전은 불가능하다. 좁은 제 연구실 안에만 틀어박혀서는 과거 선배 제현의 업적이나 요모조모로 우려먹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의 입장이 이럴진대 하물며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들임에랴.

그 많은 학과가 정말 필요한가

중앙대가 기존 구조를 대거 개편하겠다고 나섰을 때 걸었던 기대도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못 미쳤다. 기존 학과 구분은 거의 그대로 두고 다만 몇몇을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규모를 축소한 정도다. 줄어든 정원은 보다 실용적인 학과로 배당될 것이다. 학내ㆍ외의 거센 반발에, 대학가 전체가 주목하고 있던 데 비하면 싱거운 결과물이다.

그런데 더 동의하기 어려운 건 이 정도에도 인문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여전한 반대논리다. 한마디로 정원 축소로 기초학문이 붕괴ㆍ위축되고 학문적 전문성이 훼손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대학당국의 실용적 인재 양성론만큼이나 와 닿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당국의 시선은 근시안적이나마 학생들의 장래에 맞춰져 있으나, 반대교수들의 눈은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향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차제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교수들은 정말로 전국에 그 많은 독문학, 불문학, 철학, 사학과 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그 많은 학생들이 이들 학문을 전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가? 졸업 후에 얼마만큼의 학생이 전공공부를 계속하거나 유관 분야로 진출하는가? 과거 그 많은 졸업생들이 과연 해당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왔는가?

나아가 졸업생들의 진로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 봤는가? 공부로 진로를 잡지 않은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입사 서류전형에서조차 홀대 받는 현실을 개선키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봤는가? 이들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반대의 진짜 이유는 영역 지키기, 심하게는 밥그릇 지키기로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자율적 구조조정이란 것도 애당초 가능할 리 없는 것이다.

인문학이 창조적이고도 비판적인 사고의 바탕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에서도 귀중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근래 많은 기업CEO나 각 분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인문학 가치의 재발견과 함께 공부 붐이 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리의식과 책임감, 창조성과 미래 비전을 폭넓게 갖춘 인재는 인문사회과학적 교육 없이는 키워질 수 없음도 맞다. 하지만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인문학의 가치를 더 키우려면

그러므로 대학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학과의 벽에 학생들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체 학생들에게 개방해 교양학부 등을 통해 두루 가르치는 것이다. 거기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문간 통섭ㆍ융합 연구와 강의도 활발하게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학생들을 더 유능하고 균형 잡힌 인재로 키우고, 소수의 학자 지망생을 위해 다른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키지 않는 정직한 방법이다.

학과별로 높이 쌓은 담을 허물지 않으면 인문학은 더욱 고립될 것이며, 영역 지키기로 도리어 더 입지가 줄고 왜소해질 것이다. 인문학이 저 혼자만의 고고한 위치에서 내려와 낮은 곳에서 공부와 삶의 기름진 토양이 돼주는 것, 그게 품격을 갖춘 인재들을 더 많이 길러내는 길이자 인문학의 살 길이다. 제대로 된 대학 개혁의 방향도 이러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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