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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락시장에 탈북자들이 문 연 행복나눔식당 사라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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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락시장에 탈북자들이 문 연 행복나눔식당 사라질 위기

입력
2010.03.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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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간 돈도 안받고 일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도 돕는 일인데 왜 몰라주는지….”

웃음이 사라졌다. 몇 달 전만 해도 행복과 희망을 읊조렸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한때 세상이 한껏 추켜세웠던 공간은 모진 세상에 의해 사라질 운명에 놓였으니 아이러니다.

맞닥뜨릴 현실은 간단하다. 식당 하나가 간판을 내린다는 것이다. 매일 수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는 판에 뭐 그리 대수랴. 그러나 ‘행복나눔식당’이라는 간판이 품어 안은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다. 식당 사람들은 어쩌면 따뜻한 한끼를 들고 우리 사회의 비정한 경계를 넘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행복나눔식당이 문을 열었다. 식당이 주목을 받은 건 맛과 규모(20평 남짓)가 아니라 구성원 덕이었다. 새터민 25명과 노숙인 등이 의기투합한데다 사회봉사 개념까지 더했다.

정부와 언론, 관련 단체는 식당 띄우기에 한참을 나섰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못하고, 평생 몸담은 직장에서 밀려나도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을 때, 그들의 도전은 희망으로 포장해도 손색이 없었다. 식당은 새터민 일자리 창출과 사회봉사의 성공모델로 오르내렸다. “여섯 가지 반찬이 들어간 도시락을 1,000원에 팔아 많은 수익은 못 냈지만 탈북자(새터민)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게 뿌듯했어요.”(식당 총무 장철민)

그러나 떠들썩한 잔치의 뒤끝은 속이 뒤집힐 만큼 아렸다. 23일 찾은 식당 앞 천막에는 폐지가 아무렇게나 날리고 있었다. 전날 흩날린 눈발로 식당 앞 천막은 축 쳐져 있었다. 점심 시간이지만 찾는 손님도 거의 없었다. 화려한 홍보전의 끝엔 누추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속담이 에누리없이 식당에 드리웠다. 지난해 3월부터 새터민 25명은 노동부로부터 매달 1인당 83만7,000원씩 지원금을 받았다. 싸게 팔아 이윤을 덜 남기되 비슷한 처지의 새터민과 노숙인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식당을 세우자는 뜻을 한 민간단체가 받아들여 노동부에 다리를 놔준 것이다. 마침 노동부가 운영하는 사회적 일자리 기업 지원금 취지에도 맞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지원금은 끊겼다. 후원을 약속했던 민간단체가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막상 식당의 수익이 저조하자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 민간단체는 지원금 연장신청도 뚜렷한 이유 없이 해주지 않았다. 결국 새터민들이 직접 사회적 기업신청을 해 조만간 노동부 심사를 받을 예정이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송사까지 휘말렸다. 본래 식당은 김순애(55ㆍ여)씨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새터민들의 뜻에 공감해 지난해 7월부터 자리를 내주고 현재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김씨가 1년 넘게 내지 않은 임대료를 문제 삼아 서울시농수산물공사가 ‘가게를 비우라’는 소송을 냈고, 지난 달 말 법원은 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식당의 새터민들은 “원래 다른 가게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문제의 민간단체 대표가 ‘명예를 걸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굳이 현재 자리를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14년 전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2005년 12월 한국에 온 박수정(45ㆍ여)씨는 “중국에서 떠돌면서 저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식당 일에 참여했는데, 그게 안 된다고 하니 할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주 식당을 그만뒀다.

현재 남은 인원은 5명 남짓. 식당을 이끌고 있는 한창권(48ㆍ탈북인단체 총연합회 대표)씨는 “탈북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생명과 인권을 위한 일을 하는데 이런 설움을 당한다면 앞으로 누가 비슷한 일을 하려 들겠냐”고 되물었다. 노숙인 A씨는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숫자는 줄었지만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엔 김장김치 1만포기를 담가 500여 새터민 가정에 무료로 나눠줬고, 지금도 새터민이나 노숙인이 식당을 찾아오면 아낌 없이 음식을 내주는 등 행복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식당 사람들의 소망은 간단하다. 장철민(38)씨는 “상가 내에 자리를 내주면 언제든 세를 내고 떳떳하게 좋은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2018년 재개발을 이유로 올해부터 가락시장 내 점포들을 단계적으로 철거한다는 계획을 세운 이상 이들의 소망이 실현될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철거 위협은 이미 현실이 돼가고 있다.

국내거주 누적 새터민 수는 현재 1만8,000여명 이상(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으로 추산된다. 올해 통일부 조사결과 정착기간 5년 이상 탈북자의 절반 이상(56.9%)은 실업상태였다. 식당 간판 아래엔 두 개의 글귀가 더 있다.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기업’ ‘점유권을 사수하라/2010.3.9~해결될 때까지.’ 식당 사람들은 두 문구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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