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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50년을 말한다] <9> 4·19, 근대적 보편성으로의 진입-문학평론가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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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50년을 말한다] <9> 4·19, 근대적 보편성으로의 진입-문학평론가 김주연

입력
2010.03.2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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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구를 입에 자주 올리는 일이 나로서는 그리 탐탁하지만은 않다. 사일구 자체도, 그리고 이에 대해서 논의하는 일도 어느덧 '정치화'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월 십구일 당일 데모에 참가하였고, 경무대 근처까지 진출하였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였고, 이후 사일구의 진원지로 이야기되곤 하는 대학에서 캠퍼스 언론을 주도했지만, 사일구가 정치화되고 그 쟁점이 되는 일로부터 나는 나 자신을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주변의 많은 학우들이 직접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었고, 또는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 문인 내지 예술가, 학자들이 되었지만 나는 이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 왔으며, 또 사실상 그렇게 했다. 혁명적이라는 평을 받곤 했던 서울대 문리대 신문 '새세대'의 학생편집장을 두 번씩이나 맡으면서도 5ㆍ16과 6ㆍ3사태의 그 험한 세월을 거치면서 나 자신과 신문을 아울러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감사한 일이었다. 사일구를 증언하는 일반 사회 저널에 기고도 했고 이른바 정치권이라고 할 수 있는 데로부터 더러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아마도 사일구는 정치적인 현실 그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 볼 때 사일구를 정치적 행위, 혹은 정치적 사태의 범주 안에서 바라다보고 이를 '의거'인가 '혁명'인가로 논의하는 일 등등은 더 이상 그럴싸한 일이 못 되는 것 같다. 그보다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문화, 혹은 인문학등에 끼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영향과 그 성격을 생각해 보는 일이 요긴해 보인다. 워낙 문학 전공이었지만, 문학을 생업으로 하는 방향으로 내 길을 확정한 것도 따라서 제대로 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일구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근대란 무엇이며, 또한 참다운 근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근대'란 이성의 시대일 것이다. 이성은 신정(神政), 혹은 봉건 군주의 권위주의적 억압으로 벗어난 인간의 독립적 정신과 관계되며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안과 밖에서 주어지는 계몽의 결과인데, 이성이란 결국 합리적 사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이성, 그리고 그 구체적 내용으로서의 합리성은, 그러나 인식되고 성장한지는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는다. 서양의 경우 19세기 시민사회의 형성과 거의 그 궤를 같이 하지만 우리의 경우 식민피지배와 남북분단, 6ㆍ25전쟁 등의 역사 속에서 근대의 발전은 기대되기 힘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 학설은 구한말 이전의 19세기 중후반부터, 또는 1910년을 전후한 식민피지배를 전후하여 근대의 씨앗이 이미 발아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으나, 전면적 발달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근대는 사실상 사일구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며, 그 부인할 수 없는 근거가 문학 속의 근대성 대두인데, 사일구 세대의 김승옥, 이청준의 소설들이 이를 확연히 입증한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김승옥 '무진기행'ㆍ1964)

"그렇다고 해도 이제 형은 곧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형은 자기를 솔직하게 시인할 용기를 가지고 (…) 관념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 어쨌든 형을 지금까지 지켜온 그 아픈 관념의 성은 무너지고 말았지만, (…) 그것은 무서운 창조력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_ . (…) 나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혜인의 말처럼 형은 6ㆍ25의 전상자이지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 어쩌면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영영 찾아내지 못하고 말 얼굴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이청준 '병신과 머저리'ㆍ1996)

문학에서의 근대, 즉 근대문학의 발원은 연암(燕巖)에게서도 찾아지고, 춘원(春園)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통일된 학설이나 견해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사일구를 계기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근대의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사일구가 우리에게 근대의식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내포는 이렇듯 이성과 합리성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이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 없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몰주체적 순응이 아니라 주체적인 감각과 정보, 사고에 의해 회의하고 판단하는 태도와 힘이 인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에는 반드시 회의(懷疑)와 주체성이 동반된다. 아울러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요컨대 비주체적 요인에 대한 핑계가 없어진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나오는 "외롭게 미쳐가기"와 "책임"의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절실하게 제기한 것이다. 한편,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는 개인의 회의와 인식의 불명료성을 고백하고 있는 작품이다. 형과 아우 두 주인공 모두 기본적으로는 같은 세대에 속하면서 형은 개인의 체험이 실감으로 참여하고 있지 못한 관념을 적극적으로 부순다. 그런가하면 아우는 파괴된 관념의 자리에 대체할 만한 그 어떤 것, 말하자면 '경험'과 같은 것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아파한다. 이 형제의 모습은 그 둘이 모두 근대의식의 전형적인 현장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격적으로 성립해가는 과정과 그 결과에 나타나는 방황, 고통, 회의, 책임 등의 개성이 주체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뚜렷한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은 인종과 성별, 국적과 이념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상황으로서 그 어느 한 요소, 혹은 그 이상에 의해 제한받고 억압되던 전 시대의 현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말하자면, 사일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근대와 보편성의 범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정치적인 어휘로만 해석한다면, 사일구의 풍성한 의미는 매우 빈곤해진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는 '근대'가 마치 떨쳐버려야 할 유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로부터의 탈출을 논의하고, 그 풍속을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이른바 탈근대, 즉 포스트모더니즘에 진입해 있음을 은근히 대견해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른바 지배문화에 대항하는 주변문화, 혹은 하위문화를 근대와 탈근대의 구도로 주장하는 문화예술계의 소장 이론가들을 이와 관련해서 만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결국 근대=억압/지배, 탈근대=해방/저항의 도식을 이끌면서 탈근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형태의 저항을 미화하면서 '근대'를 낡은 보수의 몸짓, 혹은 과도기적 왜곡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성적 표현의 과잉을 가장 자유스럽고 진보적인 문학예술로 치장하는 적잖은 젊은 시인, 소설가, 연극인, 영화인들을 선험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의식이 그것이다.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은 따라서 탈근대의 진보와 저항을 사일구 정신의 계승이라는 면에서 스스로 적자(嫡子)임을 자처하기도 한다. 잘못이다.

사일구가 열어놓은 역사의 넓은 평원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답게 되었다. 그 뒤로 비록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의 시절을 겪었지만 그들도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 만큼 큰 물줄기를 역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일구를 보는 눈은 이처럼 거시적 역사적 시점을 가져야 하며 정치적 저항, 혹은 예술적 반란의 반복만이 그 본질은 아니다. 근대는 억압이 아니라, 억압으로부터의 풀림이다. 근대적 이성 없이 세계는 바람직한 삶을 위한 공통의 규준을 가질 수 없다. 탈신화, 탈주술(脫呪術)로 근대의 세계적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우리의 행복은 사일구가 가져다 준 큰 축복임을 나는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느낀다.

약력

▦1941년 서울 출생 ▦1964년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81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 ▦1966년 월간 '문학' 통해 평론가로 등단 ▦1970년 평론가 고 김현, 김병익, 김치수와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 ▦1978~2006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 ▦저서 <변동사회와 작가> <사랑과 권력> <독일문학의 본질>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등 ▦현 한국문학번역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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